중국 전통 문화와 현대적인 패션의 만남
2014-12-29고학수 객원기자 marchberry@naver.com
위대한 유산 Great Heritage 69 - 비비안 탐(VIVIENNE TAM)




 



과거 중국의 정치 지도자들 초상화에서 흔히 볼 수 있으며, 근대 중국 풍경을 떠올리면 생각나는 옷이 있다. 바로 인민복이다. 얼핏 생각해보면 국방색으로 네 개의 주머니가 달려 있으며, 온 몸이 가려져 답답해 보이는 인상을 준다. 그런데 이 인민복도 일종의 전통복식이라고 할 수 있는 데 50년 이상 전 중국인이 입었을 만큼 널리 입혀진 옷이기 때문이다.

인민복은 20세기 들어 중국에 등장했다. 1912년 신해혁명이 성공한 후 임시 총통으로 선출된 쑨원은 여러 개혁 방안을 발표했다. 그 중 가장 중요한 개혁이 ‘변발 자르기’와 ‘의복’이었다고 한다. 쑨원은 신해혁명 후 변발과 당시 입던 마고자가 시대에 부합하지 않고 일상 생활에 불편함을 초래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서양에서 유입되기 시작한 양복을 개량한 옷을 보급했다. 이 옷은 중국에서는 쑨원의 호였던 중산을 붙여 중산장(中山裝/中山)으로 불리며, 1929년 중국 국민당에서 국가의 공식 예복으로 지정되면서 전 국민이 입어야 하는 옷이 되었다.

재미있는 것은 각 옷의 부위마다 의미를 두었는데, 상의의 네 개의 주머니는 예(禮)·의(義)·염(廉)·치(恥)를 뜻하며, 각각의 주머니에 달린 단추는 선거, 파면, 창제(創制), 부결(??)을, 위 주머니의 뒤집힌 산 모양의 덮개는 문화에 대한 존중과 교육 증진을, 윗옷에 달린 5개의 단추는 입법, 사법, 행정, 감찰, 고시의 오권 분립을, 옷소매에 달린 3개의 단추는 민생, 민주, 민족의 삼민주의를 의미한다. 과연 명분을 중시하는 동양권 국가답다. 

디자인적으로는 주름이나 장식을 배제하여 실용성을 강조하고, 남녀노소 누구나 입을 수 있어 평등사상을 나타낸다. 색상도 다양하였는데, 노동복으로의 실용성을 생각하여 올리브 그린이나 회색, 군청색, 짙은 갈색, 검정 같은 저명도의 색상으로 제작되었다.

이렇게 1980년대 후반까지만 해도 중국에서는 일상생활에서 인민복을 입는 것이 일반적이었으나, 개혁, 개방이 본격화되는 1990년대 이후, 특히 장쩌민이 공식 석상에서 서구식 정장을 대놓고 입기 시작하면서 인민복을 강제하는 분위기가 빠르게 사라져, 인민복은 농촌 지역에서나 볼 수 있게 되었다. 최근의 젊은 사람들은 거의 입지 않으며, 당 고위 간부들도 몇몇 원로급을 제외하면 공식 석상에서는 대부분 정장 차림으로 나온다.

하지만 실용성과 전통이라는 가치는 오랜 시간이 지나도 사랑 받는데, 최근에는 디자이너들에 의해 새롭게 해석된 인민복이 다시 젊은 사람들에 의해 유행하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이 옷이 영미권에는 마오(Mao)라는 명칭으로 전해졌다는 것이다. 마오는 ‘(옷이) 중국식의’라는 의미가 되었으며, 마오 재킷, 또는 마오 수트가 이 중산장, 즉 인민복으로 번역된다. 아무래도 마오쩌둥이 쑨원보다 더 잘 알려졌기 때문이 아닐까 추측해 본다.

디자이너 비비안 탐은 바로 이 마오쩌둥을 전면에 프린트한 ‘마오 드레스’로 이름을 알리게 된다. 이 원피스가 논란이 되었던 것은 중국 출신으로 중국인에게 신성시 될 것 같은 마오쩌둥의 초상화가 마치 팝아트처럼 변형했다는 행위가 주는 충격 때문이었다. 하지만 동양적 사고와 서양식 교육을 받은 비비안 탐에게 마오쩌둥의 초상화는 단지 중국의 이미지를 잘 전달할 수 있는 하나의 오브제였을 뿐이다.

그녀는 뒤이어 불화를 프린트한 ‘부다(buddha) 드레스’로 자신의 브랜드 정체성을 각인 시켰다. 사실 디자인 방법으로 보자면 서양식 의복에 동양적 이미지를 프린트 한 것뿐이다. 지금까지도 많은 디자이너들이 사용하는 방법이다. 간단한 것 같지만 대중이나 언론의 주목을 받는 것은 쉽지 않다.

단순히 마오쩌둥의 초상화를 넣었다고 그녀가 주목을 받을 수 있었을까? 우선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중국적인 오브제 중 많은 사람들의 기억에 남을 만한 이미지를 골라야 한다. 그 이미지가 의미까지 담고 있으면 더 좋다. 그 뒤에 색을 보정하고, 옷에 배치하고 적절한 소재를 선택하는 과정을 거친다. 하지만 무엇보다 최종적인 결과물이 좋아야 한다. 그것으로 디자이너의 역량이 평가된다.

최근에 선보인 컬렉션의 주제들도 여기서 벗어나지 않는다. 2011 S/S 컬렉션에서는 매듭단추가 달린 중국 전통 복식의 구조를 바꾸고 데님 소재와 매치하여 젊은 느낌을 자아냈다. 2013 F/W 에서는 한자와 정치인을 그래픽으로 단순화시켜 체크무늬로 패턴화 하거나 검정과 빨강으로 강렬한 이미지를 완성시켰다. 2014 S/S 에서는 연꽃무늬를 흑백으로 변환시켜 새로운 이미지를 선보이고 근대 중국의 미녀가 그려진 달력에 나올 법한 이미지를 활용했다. 2014 F/W 에서는 당삼채(당나라 시대에 삼채 유약을 바른 도자기)의 색이나 문양을 이용하거나 오랜 동굴 벽화의 그림, 문살이나 가구에 조각되어 있을 것 같은 꽃무늬를 레이스로 변화시켰다.

그녀의 작업들을 보면 특정한 시대나 지역, 나라에 얽매이지 않고 시대와 공간, 장르를 초월하여 다양한 이미지를 패션으로 환원시킨다. 이렇게 자유자재로 전통을 활용하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공부해 그 의미와 역사를 정확히 알고 자신만의 관점을 정립해야 한다. 특히 전통에 대한 이해 없이 단순히 디자인으로만 접근했을 때 이미지의 타격을 입을 경우 회복하기 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다. 진보적인 패션과 보수적인 역사의 콜라보레이션은 쉽지 않다.

럼에도 불구하고 비비안 탐이 1995년 첫 패션쇼 이후로 뉴욕 컬렉션에서 지속적으로 활동을 할 수 있는 것은 결국 디자인이 좋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기대하는 중국의 전통적 색상, 종교적 상징물, 역사적 요소와 전통이 느껴지는 중국의 문화와 서구적이며 현대적인 것이 어우러지는 디자인을 지속적으로 선보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