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니멀리즘 중국 패션 디자이너의 탄생
2014-11-24고학수 객원기자 marchberry@naver.com
위대한 유산 Great Heritage 65 - 양 리 (Yang Li)








그 동안 ‘위대한 유산’은 서양의 디자이너를 중심으로 연재 되었다. 유럽으로 뭉뚱그려 알고 있던 디자이너들도 각 나라의 자연 환경, 역사, 종교 등에 따라 그 디자인이 얼마나 달라지는지 알 수 있었다.

프랑스와 이탈리아와 같은 구교 중심의 국가는 왜 화려하고 장식적인지, 독일, 스위스는 왜 패션에서 기능주의를 중심에 두고 있는지 알 수 있었으며, 패션 변방이라고 생각하던 네덜란드, 벨기에, 북유럽의 스웨덴까지도 살펴 보았다.

각 나라에서 배출되어 세계적으로 활동하고 있는 디자이너들은 자신들의 문화 유산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거나 은근하게 드러내면서 개성을 확고히 지켜가고 있었다. 그 외에도 미국과 남미 대륙, 인도까지 강한 개성과 철학을 가진 디자이너들 모두 그들의 육체와 정신에 스며들어 있는 전통이 단단한 철학이 되어 그들의 디자인에 오롯이 베어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하지만 다양한 디자이너를 살펴보면서 정작 우리나라를 포함한 동양의 디자이너를 소개할 수 없어 안타까웠다. 4대 컬렉션에서 활동하는 동양인 디자이너가 대부분 일본인인데다, 이미 소개했던 거장이 된 레이 가와쿠보를 제외하면 위대한 유산에 부합한 디자이너를 찾기란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던 중 새로운 이름이 눈에 띄었다. 분명 동아시아의 이름을 가진 디자이너였으며, 디자인 또한 동양 철학을 바탕으로 하고 있음이 명백히 드러나고 있었다. 정치적으로나 외교적으로 미국과 비견되는 국제적 지위를 갖게 된 나라, 무서울 정도로 빠른 경제 성장을 하고 있는 나라, 그러나 패션이나 디자인에 있어서 아직은 주도적인 위치를 갖지 못한 바로 그 중국의 디자이너 ‘양 리(Yang Li)’가 이번에 살펴볼 디자이너이다.

1988년생으로 2012년 S/S 컬렉션으로 데뷔해 아직 채 5년도 되지 않은 활동 기간 동안 사람들의 기대를 한껏 올려 놓은 이 젊은 청년은, 그간 중국 패션에 대한 오해를 하고 있던 사람들에게 신선한 충격이 되고 있다. 워낙 크고 인구도 많다 보니 평균화 하기 참 어려운 나라가 중국이지만, 무엇보다 디자인이라는 개념보다 무조건 ‘빨강’과 ‘황금’이면 좋다는 이미지를 갖고 있던 중국에서 이렇게 세련되고 현대적인 디자이너가 탄생했다는데 놀라움을 느낀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사실 양 리는 중국 베이징에서 태어났지만, 10살 때 호주로 이민을 가 10대를 오롯이 호주 퍼스 지역에서 자라났다. 1990년대 초반은 중국에서, 세기말과 21세기 초반을 호주에서, 그리고 패션 디자이너를 꿈꾸며 유학간 영국의 센트럴 세인트 마틴과 유럽에서의 삶으로 그의 인생을 3등분 할 수 있겠다.

중국에서 보낸 어린 시절을 과연 그가 기억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하지만 그의 컬렉션에서 드러나는 디자인을 보면 우리가 보편적으로 가지고 있는 중국의 이미지가 드러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예를 들면 하얀 화선지와 짙은 먹물로 대비되는 서예의 이미지가 그것이다. 서양 디자이너들에게서 나타나는 블랙 앤 화이트의 표백된 흰색이라기 보다는 화선지의 미색과 검정색의 조합이 아주 미묘하지만 동양과 서양적 디자인으로 구별하고 있다. (사진 1)

호주에서 오롯이 보낸 10대도 그의 디자인 감각에 큰 영향을 끼쳤음이 분명하다. 그의 컬렉션에서 나타나는 갈색에 가까운 저명도의 붉은 색은 모피나 송치 같은 소재로 표현되어 광택과 깊이를 모두 표현하고 있다.

또한 중국의 근현대사에 등장하는 정치인들이 입을 법한 국방색의 인민복은 명도는 높이고 채도를 낮춰 더욱 세련되어 보이며, 까무플라주 패턴도 명도를 낮추고 자카드 소재로 표현하여 군복의 이미지만 살짝 풍기도록 했다. 이렇듯 전세계에 잘 알려져 있는 친숙한 이
미지는 색에 약간의 변화만 줌으로써 현대적으로 보이며 대중이 받아들이기 편하다. (사진 2)

특히 양 리는 중국인 이민자지만 알렉산더 왕이나 제이슨 우와 같이 분류되기 보다는 동양적 미니멀리스트로 분류되는데, 그가 라프 시몬스와 일한 경험이 그의 디자인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이다.

세인트 마틴을 졸업한 후 그는 ‘비즈빔’, ‘가레스 퓨’를 거쳐 ‘크리에이티브 키친(crea tive kiechen)’이라는 라프 시몬스의 스튜디오에서 인턴을 거쳤다. 그래서일까.

그의 초기 컬렉션에서는 가레스 퓨처럼 거대한 부피지만 단단한 심지나 두꺼운 소재를 사용하지 않고 바람에 자연스럽게 날리는 옷들을 입고 거리를 거니는 모습이 등장한다.








이러한 의상은 오히려 한복의 정서를 담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는데, 우리가 알고 있는 중국 전통 의상인 청나라의 치파오 외에 우리와 중국이 교류하면서 서로 영향을 미친 심의 같은 한족의 의상들도 공유되었기 때문이다. 또한 ‘라프 시몬스’처럼 속이 비치는 소재로 장식인 듯 장식 아닌 장식 같은 것들을 턱턱 덧붙이기도 한다. (사진 3)

또한 ‘라프 시몬스’가 ‘질 샌더’의 마지막 컬렉션에서 보여주었던 코트, 즉 손으로 꽃다발을 잡듯 움켜쥔 코트처럼 옷을 입은 사람의 특정한 행동으로 옷의 형태가 결정되는 방식을 사용한다.

옷에 길게 붙은 천이 바지 주머니에 넣은 손에 걸쳐졌을 때와 그렇지 않을 때의 실루엣이 달라지는 것처럼 말이다. (사진 4)

동양의 거대한 철학을 옷에 담는 듯 진중해 보이는 그도 사실 10대에는 스케이트 보드를 타거나 농구 코트를 뛰어다니기 좋아하던 평범한 소년이었다. 다만 다른 소년들과 달랐던 점은 매일 나가던 운동에서 무엇을 입으면 좋을지, 보드의 패턴은 어떤 것으로 살지 등을 고민했다는 점이다. 이미 아름다움에 대한 욕망은 있었다는 뜻이다.

이렇게 보면 그의 패션은 서양의 영향력이 조금 더 많이 가미된 동양적 옷으로 느껴지기도 하지만 다음 주에는 동양의 철학이 그의 디자인에 반영된 것임을 살펴 볼 수 있다. 그것은 서양 디자이너들은 결코 표현할 수 없는 디자인 세계를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