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리브 해에서 세계로 뻗어나간 오스카 드 라 렌타 (Oscar de la Renta)
2014-07-21고학수 객원기자 marchberry@naver.com
라틴 아메리카 특집 ②

위대한 유산 Great Heritage 51








 





곧 다가올 휴가철, 당신은 어떠한 일상에서의 탈출을 꿈꾸고 있는가. 바쁜 현대인들이 가장 선호하는 휴가지의 모습은 에메랄드 빛 바다와 눈부신 백사장, 시간이 멈춘 듯 여유롭고 느긋한 분위기의 해변가일 것이다. 이러한 모습으로 그려지는 휴양지는 대개 적도 부근에 위치한다.

거리와 비용 등의 현실적인 이유로 각 국가마다 대중적으로 선호하는 지역이 달라지는데, 우리나라를 비롯한 아시아 인들에게는 가까운 푸켓이나 발리, 보라카이 등 동남아시아의 섬들이, 유럽인들에게는 지중해 연안의 도시들이 인기다.

그러한 이유로, 미국인에게는 남쪽에 위치한 카리브 해의 섬들이 이상적인 휴양지로 꼽힌다. 미국 플로리다주의 남쪽과 멕시코, 남아메리카 북쪽 사이에 위치한 카리브 해(Caribbean Sea)는 전세계적으로 흥행한 영화 ‘캐리비안의 해적’으로도 익숙해진 지명이다.

이 카리브 해에는 무인도를 비롯하여 약 7000개의 섬이 있으며, 카리브 해 연안의 나라들로는 쿠바, 아이티, 바하마, 도미니카공화국, 자메이카, 바베이도스 등이 있다. 이 지역은 특히 서인도제도라고 불리기도 한다.

서인도제도(West Indies)란 콜럼버스가 처음 도착하여 인도라고 오해한 데서 붙은 명칭이다. 콜럼버스가 처음 발견한 곳은 ‘히스파니올라 섬’으로, 현재 아이티와 도미니카 공화국으로 나누어져 있다.

콜럼버스는 이 섬이 인도의 일부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이 지역을 서인도제도라고 불렀으며, 그 주위의 호상열도가 현재의 쿠바, 아이티, 도미니카 공화국, 푸에르토리코, 자메이카 등이다. 콜럼버스가 처음으로 상륙한 곳이 오늘날 도미니카 공화국의 수도인 산토 도밍고이다.

앵글로 아메리카, 즉 미국과 캐나다를 제외한 멕시코 이남에서부터 남 아메리카의 칠레까지, 그리고 이 카리브 해의 섬들을 포함한 지역을 라틴 아메리카라고 한다.

과거 라틴 민족 국가, 즉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지배를 받아 라틴 민족의 전통을 지닌 지역을 총칭하는데, 사실 지난 시간 살펴본 포르투갈의 지배를 받았던 브라질을 제외한다면 이 라틴 아메리카의 거의 모든 나라들은 스페인의 문화권에 속해 있다. 라틴 아메리카는 이베로 아메리카라고 불릴 정도로 에스파냐 문화의 영향을 압도적으로 받는다.

‘이베로’는 스페인과 포르투갈이 있는 이베리아 반도를 의미하는데, 이렇듯 라틴 아메리카는 단순히 지리적 영역을 묶는 명칭이 아니라, 역사, 문화, 언어, 종교적 배경도 포함된다.

라틴 아메리카가 배출한 세계적인 패션 디자이너 오스카 드 라 렌타를 살펴보기 위해 너무도 많이 돌아왔다. 미국의 상류층이 선호하는 디자이너인 오스카 드 라 렌타는 바로 이 카리브 해의 섬 도미니카 공화국의 수도 산토 도밍고 출신이다.

도미니카 공화국은 이렇듯 1492년에 콜럼버스에 의해 발견되어 에스파냐의 식민지가 되었으며, 에스파냐의 무차별한 학살에 16세기 중에 원주민은 전멸되었다. 이후 아프리카 흑인노예가 대량으로 강제로 옮겨져 사탕수수, 커피, 쌀, 바나나 등의 플랜테이션에 혹사된 가슴 아픈 역사를 지니고 있다.

대부분의 라틴 아메리카 국가들이 도미니카 공화국과 비슷한 과정을 겪었으며, 현재의 라틴 아메리카의 경제에까지 영향을 미쳐 중산층이 약하고 빈부 격차가 심한 결과를 가져왔다.

따라서 현재의 국가 관점으로 봤을 때 오스카 드 라 렌타의 디자인에서 도미니카 공화국 원주민의 전통 문화 유산을 찾기는 불가능하다. 다만 이러한 안타까운 식민 지배의 역사에서 지대한 영향을 끼친 스페인의 유산은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오스카 드 라 렌타(Oscar Aristides Ortiz de la Renta Fiallo)는 1930년대 태생의 칼 라거펠트나 조르지오 아르마니처럼 여든이 넘은 나이에 자신의 이름을 걸고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할아버지 디자이너이다. 여성의류, 아동복, 향수와 화장품, 스포츠웨어, 모피, 인테리어 소품, 웨딩드레스 라인까지 광대한 오스카 드 라 렌타 패션 제국을 세웠다.

1932년 산토 도밍고에서 스페인과 이탈리아 혼혈의 어머니와 보험업을 하는 아버지 밑에서 태어난 그는 18살에 그림 공부를 위해 스페인 마드리드로 떠났으며, 학비를 벌기 위해 패션 잡지에 패션 디자이너의 신상품 일러스트레이션을 그리면서 패션계에 입문하였다. 그의 그림을 눈 여겨 본 스페인 출신의 전설적인 디자이너 크리스토발 발렌시아가에게 발탁되어 ‘발렌시아가’의 카탈로그용 일러스트레이션을 그렸고, 그의 디자인이 좋은 반응을 얻으면서 본격적으로 패션 디자인을 시작하였다.

‘랑방’과 ‘발맹’ 등 1세대 꾸뛰리에 하우스를 거치며 유럽에서 활동하던 그는 1963년 뉴욕으로 활동무대를 옮겼다. 과거의 고급 맞춤복보다는 좀 더 대중적인 기성복 시장의 가능성을 엿보던 그는 당시 패션 사업을 전개하던 엘리자베스 아덴을 거쳐 1965년 마침내 자신의 이름을 걸고 프레타 포르테 라인을 론칭했으며, 재클린 케네디에 의해 국제적인 명성을 얻게 되었다.

이후 미국의 영부인들을 비롯한 미국의 상류층을 타깃으로 하는 브랜드로 자리 매김 하며 세계의 일류 사교계의 인사들과 레드 카펫에서의 여배우들에게 뜨거운 사랑을 받고 있다. 2006년에는 ‘브라이덜 라인’을 론칭하며 대중에게까지 최고급 브랜드의 이미지를 구축하는데 더욱 박차를 가했다. 



 







그의 디자인은 앞서 살펴 본 것처럼 도미니카 공화국 고유의 전통 문화적 요소를 내보이기 보다는 카리브 해 지역의 자연환경의 영향을 받아 쨍 하게 맑고 밝은 색이 주로 사용되며, 인접색들을 매치하여 발랄하면서도 편안하고 우아한 분위기를 만들어 낸다.

또한 그의 의상은 상당히 장식적이다. 검정색 레이스, 꽃무늬 자수, 도트무늬 등은 스페인의 귀족이나 집시, 무희등을 연상시키고, 그와 함께 모피, 깃털 장식, 러플, 구슬 등의 다양한 장식으로 빛과 반짝임을 표현하여 이국적인 분위기를 만들어 낸다. 무엇보다 아주 새롭거나 혁신적인 디자인은 아니지만 끊임없이 우아함을 추구함으로써 보수적인 상류층의 취향을 만족시킨다.

특히 X라인의 고전적인 실루엣이 많지만, 풍만한 가슴, 허리, 엉덩이의 굴곡을 강조하지 않아 조신한 상류층 아가씨의 이미지를 유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