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유산 Great Heritage 32
2014-03-10고학수 객원기자 marchberry@naver.com
왜 유럽인들은 일본문화에 열광할까

 



레이 가와쿠보 (Rei Kawakubo)





 





까맣고 헐렁하고 너덜너덜한 옷을 입은 모델 6명의 작은 패션쇼로 1980년대 파리 패션계를 강타한 레이 가와쿠보. 결코 대중적이지는 않지만, 끊임없는 논란과 두터운 마니아층으로 그녀의 위치는 지금까지 견고하게 유지되고 있다.



그런데 사람들은 레이 가와쿠보의 무엇에 그토록 열광하는 것일까? 일본이라는 국가의 브랜드 가치일까? 아니면 일본 문화의 정체성? 그도 아니면 다른 브랜드에서는 절대 찾을 수 없는 디자이너의 개성? 그리고 과연 이러한 가치가 ‘꼼 데 가르송’에 들어 있기는 한 것일까?



 





 



사실 일본이 유럽에 알려지기 시작한 역사만 봐도 400년 이상이 되었다. 동인도회사로부터 시작된 네덜란드와 일본의 교역으로 단순히 저 먼 어딘가에 일본이라는 나라가 있다더라가 아니라, 일본의 문물이 실제 유럽인들의 생활에 깊숙이 파고든 시간이 그렇게 오래 되었다는 뜻이다. 



특히 17-8세기부터 네델란드를 통해 유럽에 전파된 기모노는 당시 귀족 남성들의 실내복으로 큰 인기를 끌었다. 궁정에 가기 위해 입어야 했던 격식을 갖춘 옷은 몸에 꼭 맞게 재단되어 움직임이 불편했다. 그에 비해 직선 재단된 기모노는 몸과 옷 사이에 여유가 있어 몸을 옥죄지 않고 편안했다.



가볍고 따듯했으며, 이국적인 소재 등이 그들에게 매력적으로 작용하였다. 특히 중후한 견직물을 생산한 유럽에는 당시 아직 아름다운 다색의 염색기술이 없었기 때문에 동양의 이국적인 무늬와 제직 방식으로 짜여진 천에 큰 호감을 가졌다.



하지만 일본풍만 그렇게 각광을 받은 것은 아니었다. 사람들은 언제나 이국적인 것에 열광했을 뿐이다. 전쟁이나 해외 순방, 교역을 통해 사람들의 활동 영역이 넓어지면서 외국산 물건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남들이 갖고 있지 않은 독특한 것, 외국에서 들어온 것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은 시대를 막론하고 유효했다.



외국 갔다 온 아버지가 사다 준 장난감이나 옷, 생활 용품 등은 그곳에 가보지 못한 사람들에게 동경의 대상이 된다. 나폴레옹이 이집트 원정의 기념으로 조세핀 왕후에게 가져다 준 인도산 캐시미어 숄은 상류층 여성 뿐 아니라 19세기 섬유 산업을 흔들만큼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이후 나폴레옹 3세의 비 유제니 황후의 이집트 방문으로 아랍풍의 재킷과 케이프 등이 패션계를 휩쓸었다.



터키풍, 중국풍, 코카서스풍, 이집트풍, 러시아풍, 그리스풍 등 전성기 때의 ‘존 갈리아노’가 선보인 다양한 문화에서 영감을 받은 패션만큼이나 다양한 이국적인 것에 사람들은 시선을 빼앗겼다.



그런데 19세기 말 시민사회로 접어들면서 자포니즘에 대한 수요는 더욱 확대되었다. 고흐, 모네, 르느와르, 로트렉 등 프랑스 후기인상파 화가들 가운데 자포니즘에 주목하지 않은 사람은 없다고 해도 과장되지 않을 큰 움직임이었다.



특히 만국 박람회에서는 상아, 은 등이 세공된 공예품들, 자기, 유리그릇, 옻칠공예, 일본도, 우키요에(일본 판화) 등을 통해 일본의 풍속과 생활 용품들이 전방위적으로 유럽 사회에 소개되었다.



이러한 문물의 유입은 패션뿐 아니라 예술 사조인 아르누보까지 20세기 초의 유럽 문화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 



오트 쿠튀르의 창시자 찰스 프레데릭 워스는 일본의 투구와 부채를 자수로 장식한 소재로 된 의상을 제작했으며, 폴 푸와레는 목덜미를 보이는 일본식 기모노의 구조를 본딴 디자인을 했으며, 비오네 또한 기모노의 허리 장식 오비를 연상시키는 직선 재단의 장식을 드레스에 달기도 했다.



단순히 형태만 비슷한 것이 아니라, 실제로 비오네는 젊은 시절 일본의 우키요에에 매료되어 우키요에를 수집하고 일본의 미술에 깊은 관심을 가졌었다고 한다.



이것이 17세기부터 1920년대까지 서양의 패션계에서 지속적으로 나타난 일본풍, 자포니즘의 영향이었다. 현재까지도 기모노의 무늬와 소재는 끊임없이 많은 디자이너에게 영감을 주고 새롭게 태어나고 있다.



 





 




이렇듯 처음 서양인들이 일본성에 매력을 느낀 것은 형식적인 측면이었다. 말하자면 고유한 무늬, 색, 소재가 사람들을 서양인들을 사로 잡은 것이다. 레이 가와쿠보 이전 현대 파리 패션계에 진출한 하나에 모리나 겐조 등이 취한 전략도 이렇게 과거의 전통적인 유산을 충실히 이행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레이 가와쿠보의 ‘꼼 데 가르송’은 이러한 일본적 색채와는 전혀 다른 디자인을 선보이고 있다. 그녀와 함께 파리에 진출한 요지 야마모토도 마찬가지다. 둘 사이의 공통점이라면 검정과 비정형적 형태의 의상을 꼽을 수 있다. 조금 앞서 진출한 이세이 미야케는 또 전혀 다른 세계를 보여주었다.



이들이 과연 일본성을 현대 패션계에 선보이고 있다고 할 수 있을까? 레이 가와쿠보는 일본 전통을 따르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전통과의 결별을 선언했다. 그러나 분명하게 짚고 넘어갈 점이 있다. 그녀가 말한 전통과의 결별이란 전통 무늬나 소재, 색 등의 형식과의 결별이라는 점이다.



‘꼼 데 가르송’에는 분명 일본의 전통적인 정신, 내용이 녹아 들어있다. 그리고 그 점이 서양인들이 자신들의 문화에서는 찾지 못하는 차별화 되는 시각이자, 미래의 옷에 대한 새로운 대안이며, 열광하는 포인트가 된다. 그리고 그것은 1980년대 포스트모더니즘의 물결과 함께 세계 패션계를 놀라게 한 힘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