럭셔리와 SPA, 양극화 시대의 브랜드 해법
2014-01-27김소희 말콤브릿지 대표 

 


 


 



1. 소비양극화, 거부할 수 없는 팩트(fact)
‘소비양극화’가 이슈가 된 것은 1990년대 후반 무렵부터다. 실제로 97년 6월 2일자 한겨레 신문에는 ‘아주 비싸던지, 아예 싸던지-불황시대 소비 양극화 현상’이란 기사가 대서특필 되었던 바 있고, 이후 10여년이 지난 지금 소비양극화는 점점 더 심화되어 전세계 소비 흐름을 대표하는 하나의 굵직한 흐름이 되어 버렸다. 


소비양극화가 패션에 몰고 온 결과는 거의 지각변동에 가까운 것이었다. 먼저 럭셔리 마켓을 보자면, 루이비통이나 샤넬 같은 올드 럭셔리(Old Luxury) 시장은 물론, 캐나다구스(Canada Goose)와 몽클레어(Moncler) 같은 뉴 럭셔리(New Luxury) 시장이 폭넓게 개척되며 파이가 커졌다. 저가 시장 또한 마찬가지여서, 과거의 오합지졸 같은 저가는 온데간데 없고, 유니클로나 H&M등 대기업형 저가 브랜드들이 새로운 가치의 저가 시장을 거대하게 창출해냈다.


이런 가운데, 그동안 패션계의 주축을 자처해온 다수의 중저가 내수 브랜드들은 엄청나게 작아진 파이를 서로 나누어야만 하는 참담한 현실로 내몰렸다. 그리고 많은 트렌드 전문가들은 더 이상 중저가 브랜드를 위한 입지는 남아있지 않다고 단호하게 정의내린다


이런 환경 속에 브랜드를 운영하다보면, 몇 개의 선명한 선택지들이 무언의 강요로 다가옴을 느낀다. 럭셔리가 될 것인지 저가가 될 것인지를 택할 것, 그리고 만약 두 가지 다 마땅치 않으면 브랜드를 접어버릴 것.


이 암묵의 강요야 말로 브랜드 운영의 가장 큰 고충이 아닐 수없다. 소비양극화란 팩트를 저버릴 수도, 그렇다고 선택할 수 없는 선택지를 고를 수도 없는 이 딜레마 속에 대체 브랜드들은 하염없이 어떤 길을 걸어가야 하는 걸까


2. 생존에 필요한 트렌드, 생존을 위협하는 트렌드
대기업에서 은퇴한 50대 초반의 사람들 중 적지 않은 수가 똑 같은 딜레마를 경험한다고 한다. 커가는 자식들을 보면 경제활동을 지속해야만 하는데, 자신의 힘으로 사업을 하기엔 턱없이 부족하고, 그렇다고 재취업을 하자니 나이가 허락지 않는다고 말이다. 이들의 상당수는 그래서 역술가를 찾는다. 과연 내가 사업을 하면 성공할 수 있을지 작은 희망이라도 품어보려고 말이다. 그러나 한 직장에서 은퇴할 때까지 충실히 오래 일한 사람일수록 점괘는 ‘당신은 사업은 맞지 않는다’라고 나오기 십상이어서, 가뜩이나 무언가 해볼까 했던 의지마저 소심해져 돌아오기 일쑤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은퇴자들은 창업을 한다. 그리고 많은 수가 실패하지만, 또 놀랍게도 창업자 중 몇몇은 멋진 성공을 이뤄낸다. 생각해보면 주변 사람들은 언제나 사업하겠다는 사람을 만류하거나 불길한 시선으로 바라본다. 그럼에도 그들이 창업을 하는 이유는, 매우 간단하게 그들은 그럴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자식이 중 3인데 은퇴하게 된 50대 가장에게 대체 또 다른 무슨 선택지가 있단 말인가. 그에게 생존은 운명이고, 그 운명을 받아들이는데 있어, 당신은 사업에 어울리는 사람이네 아니네 따위는 애초에 고려할 여지조차 없는 조건인 셈이다.


패션브랜드들도 마찬가지다. 많은 브랜드들이 딜레마에 처해있지만, 실제로 그들의 선택지는 넓지 않다. 지금 당신의 브랜드가 럭셔리 브랜드가 될 만한 강점과 헤리티지(Heritage)를 가지고 있는가, 라는 질문에 흔쾌히 그렇다고 말할 수 있는 브랜드는 없다. 또한 지금 당신의 브랜드가 유니클로나 H&M과 경쟁할만한 자본력이 있는가, 라는 질문에도 우리는 긍정할 여력이 없다.


무심한 트렌드 전문가들은 ‘그럼 당신이 설 자리는 더 이상 없다’라고 말하면 그뿐일 것이다. 그러나 생존을 해나가야 하는 입장에서 그런 말은 들으나 마나 한 이야기다. 그래서 ‘그게 여러모로 합리적이므로 브랜드를 접어야 겠다’고 고개를 끄덕일 수 있는 사람이 누가 있단 말인가.


요컨대 생존 앞에 트렌드는 때로 무의미하다. 어떤 트렌드가 나를 위협할 지라도, 자기가 가진 자본의 크기를 정확히 인식하고, 자신이 잘할 수 있는 직능의 강점을 인식하고, 그 안에서 우리는 자신에게 필요한 정보를 모아 나가야야 한다. 이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인 동시에 가장 현명한 선택이다. 그러니 더 이상 럭셔리와 spa의 잘나가는 소식 들에는 휘둘리지 않도록 하자.


지금 필요한 건, 내가 점유할 수 있는 시장의 정보, 내가 경쟁하게 될 브랜드들에 대한 정보, 내가 팔아야 할 제품에 대한 정보이지, 내가 애초에 진입조차 할 수 없는 시장에 대한 자세한 정보들이 아니기 때문이다. 즉, 생존을 위협하는 트렌드에 직면해서 우리에게 더욱 더 필요한 것은 지금 자신의 생존에 필요한 정보들은 무엇일까에 초점을 두는 일이다.


3. 탄력적 운영, 단기적 처방의 효과
한편, 이 같은 불경기에도 우리는 간간히 ‘잘나가는’ 브랜드들의 소식을 듣는다. 이들은 여전히 럭셔리브랜드도 아니요, spa 브랜드들도 아니지만 백화점이나 로컬 마켓에서 꾸준한 승승장구를 보여준다. 이런 모든 브랜드들의 공통점은 바로 ‘탄력적 운영’이다.


어떤 트렌드가 가시화될 때 이를 전면적으로 수용하는 브랜드들도 있겠지만 신중한 브랜드들이라면 우선 탄력적으로 적용해보기 마련이다. 소위 잘나가는 브랜드들은 바로 그렇게 했다. 소비 양극화가 거부할 수 없는 팩트가 되면서, 이들은 미묘한 수준으로 제품의 밸류 업 시키거나, 가격을 다운시켰다. 여성복의 ‘듀엘’이나 ‘톰보이’같은 경우 럭셔리는 아니지만 미묘한 제품의 밸류를 창출하는데 성공한 사례이고, 여성복의 ‘모조에스핀’같은 경우도 저가는 아니지만 미묘한 가격 다운으로 톡톡한 효과를 보고 있다.


이들은 럭셔리브랜드가 되기 위해 과도한 레벨업을 추진하지도 않았고, spa브랜드가 되기 위해 과도한 가격인하를 단행하지도 않았다. 단지 브랜드의 범주 내에서 양극화 트렌드를 미묘한 수준에서 탄력적으로 적용한 것만으로도 이 시장에 머물고 있던 소비자들에게 긍정적 반응을 얻어냈다.


이런 브랜드들이 시사하는 바는 크다. 이들 브랜드는 우리가 트렌드 정보를 접할 때, 자신의 위치에서 탄력적으로 수용한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입증해준다. 사실 어떤 트렌드이건 그 트렌드가 사회 전반을 아우를 때, 우리는 의무적으로 탄력적 적용이라는 것을 해보아야 한다. 그것이 패션사업을 하는 사람으로서 트렌드를 접할 때 마땅히 해야할 일이기도 하다. 안타까운 것은 많은 브랜드들이 트렌드를 접할 때, 자신이 100% 수용할 수 없는 트렌드라면 이를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모 아니면 도를 고집해온 브랜드 운영이 오늘날의 불경기 속으로 스스로를 내몰아 온 것은 아닌지 곱씹어 보아야 한다.


물론 이 같은 처방은 단기적인 것에 불과하다. 결국 브랜드가 장기적으로 생존해나가려면 자기 색깔을 지녀야 한다는 거대한 원칙을 벗어날 수 없다. 즉, 트렌드의 탄력적 적용은 브랜드가 보다 심오한 준비를 할 수 있는여력을 마련해줄 뿐, 장기적 전략은 되기 어렵다.


4. 조직의 다이어트, 꼭 필요한 준비
장기적으로 브랜드가 어떤 색깔을 지녀야 할 지는 결국 브랜드 각자의 몫이다. 그러나 양극화가 심해질 소비환경에 대비하여, 모든 브랜드가 반드시 거쳐야 할 하나의 단계가 있으니 그건 바로 몸집을 줄이는 일이다. 생존을 원한다면 몸집을 줄여야 한다.


Spa와 경쟁할 것이 아니라면 몸집을 줄여야 한다. 몸집을 줄이지 못하면 매출에 얽매이게 되고, 그러다보면 밸류를 높일 수도 없을 뿐더러, 혹 저가로 팔아 이익이 남는다 해도 운영비가 빠듯하여 이를 재투자 하기 어렵게 된다. 저가 브랜드로 내몰리지 않으려면 지금 필요한 혁신은 조직의 다이어트이다.


이런 조처들이 패션계에 몸담고 있는 사람들에게 끼칠 파장을 생각하면 쉬이 입에 담기 어려운 문제다. 그러나 가라앉고 있는 배에 모두 올라 앉아 있은 들 무슨 소용이겠는가. 오히려 적절한 구조조정과 적절한 신규창업이야말로 업계에 새로운 에너지를 가져올 수 있다. 과거의 패션사를 되돌아볼 때, 언제나 새로운 강자들은 이런 시기에 이런 과정을 통해 나타났음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요컨대 브랜드들은 하던대로 할 수도, 그렇다고 판을 뒤집어 환골탈태를 할 수도 없는 입장이다. 지금은 그저 몸집을 줄이고, 트렌드를 탄력적으로 적용하며 브랜드를 지켜야 할 때다. 그리고 장기적으로 어떤 전략을 취해야 할 지 차차 신중한 발걸음을 내딛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