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중해의 매혹적인 섬, 시칠리아 - Dolce & Gabbana
2013-06-13고학수 객원기자 기자 marchberry@naver.com
위대한 유산 Great Heritage 1




우리는 그 동안 선진화, 현대화를 ‘서구화’라고 생각해 왔다. 그래서 그들은 항상 앞서가고 우리는 뒤따라가기 급급했다. 특히 패션계에서 최신 트렌드는 ‘서구’에서 오는 것이 당연했다. 우리보다 디자인적으로 앞선다고 생각되는 ‘그들’도 사실은 자국의 전통 문화를 끊임없이 재해석하여 새로움을 만들어 내고 있다. 전통을 토대로 한 브랜드는 세계적인 명품 기업으로, 스타 디자이너로 사랑 받고 있다. 그렇다면 궁금해진다. 그들은 어떻게 고루한 과거를 성공적으로 현대화 할 수 있을까? 이에 대한 궁금증에서 출발한 글이 ‘위대한 유산’이다. 그 해답을 찾아가는 과정이 될 것이다. <편집자주>



조르지오 아르마니와 베르사체 하면 이탈리아, 비비안 웨스트우드와 알렉산더 맥퀸에서는 영국, 이세이 미야케와 요지 야마모토에서는 일본 냄새가 난다. 어쩔 수 없다. 누구나 겉으로 많이 드러나냐 적게 드러나냐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자신의 뿌리는 감추어지지 않는다.



전통을 녹여낸 패션으로 전 세계인에게 사랑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이 부럽다. 그렇게 함으로써 사람들은 알게 모르게 그 나라에 대한 동경을 하게 되고 흥미를 느낀다. 언젠가는 여행을 가고자 할 것이며, 그러기 위해 끊임없이 정보를 모으고 공부하게 된다. 일종의 문화 전파가 되는 것이다. 디자이너로서 이보다 자긍심 높은 작업이 있을까.



돌체 앤 가바나의 2013년 S/S 컬렉션만 해도 그렇다. 도미니코 돌체의 고향이기도 한 시칠리아가 이렇게까지 컬렉션 전반에 직접적으로 등장한 것은 처음이다. 그간 검은색 레이스와 레오파드 무늬 등을 통해 관능적인 시칠리아 여인을 은유적으로 표현해왔다면, 이번 컬렉션에서는 직접적인 힌트를 통해 시칠리아의 지리와 역사에 대해 공부할 수 있다.



처음엔 막연히 지중해 휴양지 룩을 지향한 것이라고 예측했다. <사진 1>처럼 큼지막하게 들어간 스트라이프는 마치 지중해 레스토랑의 차양이나 파라솔을 연상케 했다. 하지만 직접적으로 시칠리아 섬<사진 3>과 그 위쪽에 자리한 에올리에 제도(ISOLE EOLIE)에 대한 귀여운 지도 프린팅<사진 2>을 본 순간 확신할 수 있었다. 7개의 화산섬으로 이루어지고 유네스코의 세계유산에 등록된 에올리에 제도는 시칠리아 인이 아니라면 굳이 상의 전면에 넣을 생각도 못할 것이다.






<사진 4>에서는 시칠리아의 대표적인 휴양도시인 타오르미나의 인사(saluti da taormina)인 바다·태양·사랑(mare sole amore)을 프린팅 했다. 마치 시칠리아의 특산물인 레몬이 가득 들어 있었던 가마니를 그대로 옷으로 만든 것처럼 적당히 낡아보이면서도 정교해 보인다. 제주도 출신 디자이너가 의상에 제주도 고지도와 ‘혼저옵서’를 프린팅 한다면 어떨까 상상해 본다. 



<사진 5>처럼 이번 컬렉션에서 자주 보인 프린팅 중 하나는 갑옷을 입고 방패를 든 기사들이었다. 이는 오페라 데이 푸피(Opera dei Pupi)라는 세계 무형유산에 등재되어 있는 시칠리아의 전통 인형극이다. 시, 로맨스, 인기 있는 오페라 극본에 등장하는 영웅이나 악명 높은 도둑, 성인 등의 플롯에 기반을 둔 즉흥극이다. 19세기 초에 시작되어 민중들 사이에서 큰 인기를 누렸다. 정교한 인형의 조각과 채색 등은 이 분야의 전문적인 장인이 담당한다. 서로 다른 계급에 속한 사람들이 한데 모여 일상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는 기회가 되었던 이 공연으로 시칠리아 인들의 정체성을 공고히 할 수 있었다. 이것이 무형문화의 힘이다. 공동체에게는 소속감을 느끼게 하고 타문화인에게 호기심을 느끼게 만든다.



그렇다면 단순히 세계 문화유산으로 선정되어 있는 우리의 판소리나 종묘제례 풍경을 옷에 프린팅한다고 이렇게 매력적으로 보일까? 너무 순진한 생각이다. <사진 5>를 다시 한번 살펴보자. 치마 허리와 밑단은 강렬한 기하학적 도형으로 이 또한 시칠리아를 연상케 하는 전통 문양이 들어가 있으며, 상의에는 꽃무늬가 들어가 있다. 이렇게 복잡한 무늬가 믹스 매치되어 있는 의상이 좋아 보이는 이유는 색과 무늬 정리를 잘했기 때문이다.








우선 치마의 기사 부분을 제외하면 옷은 전체적으로 대략적인 대칭형을 이루고 있다. 여기서 중요한 단어는 ‘대략적인’이다. 이렇게 손그림처럼 질감이 살아있는 그림의 경우 기하학적 도형처럼 완벽한 대칭을 이루기 보다는 대칭인지도 잘 인식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더 자연스러워 보인다.



그렇게 하면 가장 강렬하게 강조하고 싶은 부분은 눈에 확 들어오면서 나머지 복잡한 부분이 뒤로 물러나고 정리되어 보이는 것이다. 게다가 가슴 아래 부분과 치마 양쪽의 커튼 부분이 다른 부분에 비해 저명도로 모델을 더 날씬하게 보이도록 돕고 있다. 



<사진 6>처럼 인형극의 휘장이 마치 무대에 설치된 것처럼 치마 윗부분에 주름을 잡아 더 입체적으로 보이도록 하거나, 정교한 액세서리들<사진 7>이 더해졌을 때 그 컬렉션의 완성도는 더욱 높아진다.



돌체 앤 가바나 패션쇼의 마지막에는 등장했던 모델들이 한꺼번에 등장해 웅장한 느낌을 자아낸다. 이러한 무대 연출은 그들이 만들어낸 세계가 어딘가 진짜 존재할 것 같은 환상을 더욱 공고히 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