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모델했지만 ‘패션디자이너’가 천직
2013-05-23이화순 편집국장 lhs@fi.co.kr
이화순의 ‘아름다운 만남’- 루비나「RUBINA」대표



독실한 크리스챤인 루비나씨는 "신작 아이디어가 고갈될 때는 '창조주의 DNA를 나눠가진 딸'이라 되뇌며 기도·명상에 잠긴다"며 창작 노하우를 털어놓았다.


“입체 패턴 뜰 때 가장 행복해…중국 시장 진출에 큰 기대”



번안 샹송곡 ‘눈이 내리네’를 멋드러지게 부르던 그녀…. 이국적인 분위기가 생생하다. 패션쇼 무대를 비추는 카메라에 잡힌 톱 모델의 모습도 눈부셨다. 훤칠한 키, 멋진 외모와 패션에 허스키한 음색으로 샹송을 부르고, 무대를 워킹하던 그녀는 70년대 화려한 스타였다.



루비나(64?본명 박상숙). 세월이 비켜난 듯한 그녀는 ‘입체 패턴’ 뜰 때가 가장 행복하다는 패션 디자이너를 천직이라 한다. 10여년 모델, 가수 생활을 하다 30년을 넘겨 디자이너를 해보니 그 매력을 끊을 수 없다고 말한다. 베이징컬렉션 참가 후 중국 바이어들의 요청이 밀려들어 행복한 비명을 지르고 있다. 또 내달 중순 인천에서 열릴 패션쇼 무대를 앞두고 목하 고민 중인 그녀를 만났다.



◇ 내달 인천서 9명 디자이너와 패션 갈라쇼



환경 미술품이 눈길을 끄는 서울 선릉 맞은편 「루비나」 빌딩은 1층에서부터 7층까지 미술품과 앤틱의 조화가 멋드러졌다. 각 층의 계단과 복도, 심지어 엘리베이터문까지 예술성으로 빛났다. 디자이너 겸 경영자로 또 예술애호가로 빌딩 전체를 예술품처럼 꾸며 놓았다.
5층의 사무실에도 아프리카를 비롯해 세계 각지에서 컬렉션한 앤틱 제품들이 가득하다.



디자인 구상이 한창인듯하여 “벌써 2013 추계 서울컬렉션 준비를 시작하는지” 묻자 “서울컬렉션 전에 큰 쇼가 하나 더 있어 한창 구상 중”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6월 28일 인천 하얏트호텔에서 열리는 ‘제4회 인천 실내 무도 아시아 경기대회 축하 패션 갈라쇼’에 박윤수 최복호 장광효 박춘무 홍은주 홍혜진 곽현주 고태영 신재희 디자이너 등과 함께 ‘빛’ ‘바람’ ‘춤’을 주제로 화려한 무대를 선보인다. ‘2014 인천 아시안게임’에 앞서 패션 갈라 축제를 벌이는 것이다. 



그녀에게 어떤 옷을 좋아하느냐고 물었다. “연령대 없이 멋스럽고 늘 입던 옷처럼 옷과 사람이 일체를 이루는 옷. 마, 면, 실크 등 자연 섬유와 데님, 테일러드 재킷, 그리고 입어서 편안한 ‘생명력 있고 살아있는 옷’을 좋아한다”고 대답했다.



그녀의 인생 전체를 보면 춤과 노래, 패션의 영역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진 융합형 인재지만 그는 후세에 “디자이너로서 좋은 작품을 남긴 선구자로 평가받고 싶다”고 말한다. 



“저는 주어진 일에는 늘 최선을 다해왔고 그래서 언제나 성실한 사람으로 평가받아요. 지금까지 가수와 모델, 디자이너의 삶을 살아왔지만, 그 중 제가 선택한 것은 패션 디자이너가 유일해요. 33년 전 패션 디자이너로 첫발을 내딛은 후 정신없이 달려왔는데, 얼마 전 제가 걸어온 길을 뒤돌아보고는 ‘옷을 만드는 일이 참 행복하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RUBINA」 2013F/W 서울컬렉션


◇ 가장 행복한 순간은 입체 패턴 뜰 때



가장 행복한 순간을 묻자 “바디 마네킹에서 입체 패턴을 뜰 때”라고 대답했다.



‘하루 종일 선 채로 입체 패턴을 뜨는 일이 그토록 행복할까?’ 싶어 다시 묻자 “이 옷이 어떻게 만들어질까 하고 상상하면 너무나 행복하다”며 소녀 같은 눈동자로 미소를 날렸다.



“패션 디자이너로 일하는데 권태감이 전혀 없어요. 남들 보기에는 패션 디자이너가 화려한 직업 같지만 막상 해보면 중노동일 때가 많거든요. 제 경우는 13년간 모델 생활을 하고 한창 잘 나가던 톱 모델로 패션 디자이너에 도전했는데 바로 입체 패턴 공부를 시작하며 지금까지 30여년을 한결같이 제 스스로 모든 디자인의 입체 패턴을 직접 떠 왔어요. 그러다보면 하루 종일 서서 일해야 하고, 다리도 퉁퉁 붓기도 하지요. 하지만 이 옷이 어떻게 나올까를 상상하는 것 자체가 너무나 짜릿하고도, 행복해요.”



  디자이너들 중에 입체 패턴을 직접 뜨는 이는 극소수다. 언제부터 입체 패턴을 직접 했을까. “30년 됐죠. 디자이너가 되기로 결심한 후 파리에서 공부한 선생님을 모시고 故 박혜숙 디자이너, 박윤수씨 부인 김미경 디자이너와 함께 4번 정도 배운 후 계속 입체 디자인을 했죠”란다.



1년 365일 하루도 회사를 쉬는 날 없이 매일 3개의 입체 패턴을 떠왔다. 심지어 니트 티셔츠 패턴도 직접 떠왔단다. 또 본인이 모델 출신이어서 몸에 잘 맞는 패턴의 중요성을 남보다 잘 아는 것도 입체 패턴을 고집한 이유 중의 하나. 더구나 고객의 개인적인 신체적 특성을 살려 낼 수 있어 고객의 반응이 좋다보니 즐겁게 일해 왔단다.



한 자료에 보니 「루비나」 의 연간 매출이 100억원이라 기재돼 있던데 맞는 액수일까 궁금해 확인하니 망설임없이 “그랬어요. 헌데 최근에는 약간 줄었어요”라는 대답을 했다. “그래도 아직 백화점 13개 군데에 입점해 있고, 베이징컬렉션 후 중국 바이어들의 관심이 커져서 기대가 크다”고 답했다.



◇ 차이나패션위크 성과로 자신감 충만



패션계에서도 최고의 완벽주의자로 통하는 그녀는 몇 년 전 새로운 일을 해볼까 하는 생각도 했다고 털어놓았다.



슬그머니 ‘나도 좀 여유롭게 지내볼까’란 마음에 그림, 도자기, 조각, 패션학교 등을 생각해보기도 했다는 그녀. 하지만 패션에 대한 매력에 들뜬 마음을 고쳐 잡았다.



‘60도 젊다’는 그녀, 최근에는 중국 시장에 큰 매력을 느끼고 있다.
지난 3월 29일 2013/14 F/W 차이나패션위크의 코리아 디자이너스 컬렉션(Korea Designer’s Collection)에 신장경 유혜진 이주영 장윤정 등과 함께 참가해 한국 패션 디자인의 우수성을 알리고 왔다. 이어붙이기와 날염 등을 자연스럽게 조화시킨 여성적인 라인의 작품들에 채도를 낮춘 무거운 색상들을 사용해 도시적인 이미지를 나타내는 작품들을 선보였다.



“서울컬렉션 무대가 끝난 3월 27일 오후 10시까지 짐을 챙겨 다음날 오전 4시 베이징으로 가서 그 이튿날 쇼를 하는 강행군을 했죠. 하지만 중국 바이어들의 관심과 프로포즈가 많아 상당한 성과로 이어질 것으로 보입니다.”



시즌 디자인, 가죽제품 컨설팅 등에 대한 요청도 많았다는 루비나 디자이너는 가을에도 서울컬렉션과 함께 차이나패션위크에 참가할 예정이다.



“저는 대단히 실리를 따지는 사람이에요. 모델할 때도 해외에 나가 텅빈 곳에서 쇼를 한 적이 더러 있었는데 한국에서는 대서특필되곤 하더라구요. 저는 투자에 비해 수익이 안 되면 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파리컬렉션 역시 그런 이유로 주위의 추천 권유에도 불구하고 하지 않았죠. 하지만 차이나패션위크는 해볼만하다고 판단했어요.”



중국이야말로 잘 되면 시쳇말로 대박나는 곳인 만큼, 계속 해보겠다는 의욕이그녀를 불태웠다.






서울예고 시절부터 미술에 남다른 조예를 보였던 루비나 디자이너는 「RUBINA」사옥 안팎을 미술품과 앤틱으로 꾸며놓았다.


◇ 패션 디자이너 입문



모델 활동을 1980년대 초반까지 하던 그녀가 언제 어떤 이유로 패션 디자이너에 도전한 걸까.



“저는 정상에서 뒤로 처지는 것을 견디지 못할 것 같았어요. 톱 모델로 이미 정상에 섰기에 다음을 준비해야 할 것 같았죠.”



그녀의 정식 디자이너 데뷔는 1980년 중앙디자인 콘테스트 입상부터 시작된다. 하지만 그 몇 년 전 모델 활동하던 때에 살던 아파트 위에 따로 방을 얻어서 여성복 디자인을 하다 6개월만에 그만둔 일도 있다. 당시에 가수, 모델을 함께 하던 때라 모델 촬영에 지방 공연 등으로 경영을 지속하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중앙디자인 콘테스트 입상 2년 후에 그녀는 국내는 물론, 홍콩 하얏트와 타이페이 군무관에서 개인 패션쇼를 시작했다. 또 1990년엔 진태옥 박윤수 디자이너들과 함께 SFAA를 발족했다. 지금까지 1회 빠진 것 외에는 45회에 걸쳐 컬렉션을 발표해왔다. 



그녀의 옷은 종종 보헤미안 같다는 말을 듣는다. 틀을 벗어난 자유로움과 자연스러움, 숲과 나무 등 자연을 떠올리는 아름다운 색채감이 살아 있다.



차이나패션위크에 참가한 그녀는 ‘서울컬렉션이 많이 개선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여기저기서 나뉘어 열리는 패션쇼장을 오가는 셔틀버스를 만들어 고객들이 편리하고 즐겁게 컬렉션을 볼 수 있어야 한다는 것. 또 신인만 중시되는 세태지만 기성 디자이너들의 존재감을 높이 사야 한다는 말도 덧붙였다.



후배들에게는 “우리 때보다 요즘 후배들은 많이 힘들겠지만, 힘든 것 자체가 살아있다는 증거다. 노력하면 반드시 좋은 결과가 나온다. 성실히 하면 원하는 결과가 나올 것이니 ‘빨리’ 보다는 ‘성실하게’ 노력하라”고 당부했다.



조각을 좋아해 건물에도 박효정씨의 작품을 여럿 설치해둔 그녀는, 30대에 기독교의 ‘트레스 디아스(Tres Dias)’를 경험하고 만물과 사람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갖고 충실한 신앙인의 길을 걷고 있다고 말했다. “하나님의 은혜 덕에 무슨 일이던지 일이 술술 풀린다”는 그녀는 24년 전 패션 디자이너들을 중심으로 창건한 청담동의 아름다운교회 창립 멤버로 지금도 권사를 맡아 교회 청소까지 직접 할 정도로 열정적으로 봉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