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를 완성하는 ‘불
2012-12-06고학수 객원기자 marchberry@naver.com
마음을 움직이는 Fashion & SHOW!



프로메테우스는 불을 훔쳐다 인간에게 전해 준 죄로 독수리에게 끊임없이 간을 쪼아 먹히는 형벌을 받았다. 인간이 불을 다룰 수 있게 되면서 인류는 문명이 생겨났으나, 불의 두려운 위력이 세계의 파멸을 가져온다는 ‘종말의 불’에 대한 신화 또한 많이 전승되고 있다. 이러한 불의 속성 때문에 불은 파괴와 생명력, 모든 것의 종말이자 시작이라는 이중적인 이미지를 가지게 되었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였던 헤라클레이토스는 만물의 근원을 ‘불’로 설명하려 했다. 불이 만물을 통일하는 근본 물질로 보고, 세계질서는 "일정한 정도로 타오르고 일정한 정도로 꺼지는 영원히 사는 불"이라고 썼다.



그는 불의 현상 형태를 확장하여 연료·불꽃·연기뿐 아니라 대기의 에테르까지 포함했으며, 이 공기 또는 순수한 불의 일부가 바다 또는 비로 변하고, 바다의 일부가 땅으로 변한다고 하였다. 그 결과 동적인 평형이 이루어지며, 이것이 세계의 질서 있는 균형을 유지한다는 것이다.



현대에 와서 불은 산소와 물질이 화합하여 연소하는 현상으로, 빛과 열을 내는 에너지로 정의된다. 불은 발화 온도에 따라 꽤나 다양한 색을 나타낸다. 모닥불이나 캠프파이어 할 때의 따스한 붉은 빛, 노란 빛도 있고, 가스레인지의 파란 빛도 있다. 이렇게 다양한 의미를 가진 불을 패션쇼로 끌어들인 디자이너가 있다.





릭 오웬스는 자신의 세계관이 뚜렷한 디자이너이다. 그가 선보이는 옷들은 회색 등의 모노톤을 주고 사용하고, 길고 높은 형태를 반복적으로 사용하여 중세의 고딕적 미학관을 가지고 있다고 평가 받는다. 그런 릭 오웬스가 이번 2012 F/W 컬렉션에서 불을 이용한 패션쇼를 선보였다.



패션쇼가 시작되자 직선의 무대 저 안쪽에서 불길이 피어 올랐다. 모델들은 불 특유의 주황색 빛과 열기를 뒤로하고 걸어 나왔다. 모델들은 모두 니트로 짜인 그물망 같은 것을 얼굴에 썼는데, 마치 중세의 성 안 쇠창살의 감옥에 갇혀 있는 듯한 이미지를 선보였다. 패션쇼를 연출하는 방식은 옷과의 연계성이 있어야 하는데, 이번 컬렉션은 불이라는 신선한 요소를 가져왔으며, 그것이 릭 오웬스가 보여주고 싶어했던 옷의 이미지와 너무 잘 어울렸다.



그런데 사실 릭 오웬스가 뜬금없이 불을 패션쇼에서 쓴 것이 아니다. 그의 세계를 만드는 연속선 상에서 나온 것이다. 릭 오웬스의 패션이 고딕스럽다는 이미지를 가지게 된 것은 비단 옷 때문만이 아니다. 크게 보면 그의 컬렉션 무대가 릭 오웬스의 그러한 이미지를 구축하는데 일조한다. 이는 그와 오랜 시간 손발을 맞춰 온 파노스 이아파니스(Panos Yiapanis)라는 스타일리스트와의 작품이기도 하다.






그의 무대는 심플하다. 어두운 통로에 회색빛 하나로 다양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2011 S/S 남성복 컬렉션에서는 저 심연의 끝을 알 수 없는 어둠에서 남성 모델들이 걸어 나오는 컬렉션을 선보였으며, 2011 S/S 컬렉션에서는 반대로 강렬한 빛으로부터 나오는 여성 모델들을 등장시켰다. 이러한 장면들을 보고 있노라면 인간이란 무엇인가, 나는 무엇을 위해 사는가? 하는 깊은 질문들이 터져 나온다. 릭 오웬스의 컬렉션은 인간의 근원적 성찰을 묻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