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을 보는 눈과 예술을 보는 마음의 변화
2012-12-06최경원 현디자인연구소 대표 chk869@hanmail.net
한국 디자인 기행- 서로 다른 자연관이 투영된 미학관의 차이



흔히 중국과 한국의 예술에 대해 ‘자연스럽다’는 말을 많이 한다. 하지만 정작 뭐가 자연스러운지 되물어 보면 답하기가 좀 난감해진다. 산과 강을 많이 그리고, 나무를 많이 썼다고 해서 자연스럽다고 한다는 것은 좀 설득력이 떨어진다. 서양 예술 작품들이 산과 강을 안 그린 것이 아니고, 나무를 안 쓴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자연스럽다는 형용사는 예술적 사실을 설명하기에는 너무나 부족하다. 예술의 목적과 예술의 그 많은 가치들을 담기에는 턱없이 모자란다.



그렇기 때문에 좀 더 명확한 증거와 납득할 만한 가치관으로 동아시아의 그림들이 자연을 어떻게 지향했는지를 분석적으로 설명할 필요가 있다.
한국을 비롯한 동아시아의 그림들이 자연을 중요시하고, 자연을 목적으로 했다고 하지만, 고대의 그림들을 살펴보면 산이나 나무와 같은 자연 보다는 서양처럼 사람을 더 우선시 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서양 예술에서 자연을 묘사하지 않은 것도 아니다. 모나리자의 그림을 보면 배경으로 산수화 같은 풍의 자연을 분명히 묘사하고 있다. 자연을 배경에 두고 사람을 더 크게 부각시켜 그린 점에 있어서는 오히려 동아시아의 고대 그림과 르네상스 시대의 그림들이 닮아 있다. 자연을 묘사함에 있어서도 그렇다.





일반적으로 산수화에서는 사람의 크기를 무척 작게 그려서 자연을 보는 동아시아 사람들의 겸손한 미학관을 잘 표현하고 있다. 산과 나무, 강과 하늘과 같은 대자연이 가장 그림에서 부각되고 인간은 그런 자연 속에서 유유자적하는 크기로 보통 그려진다. 그런데 서양에서도 이런 구도로 그림들이 그려졌다.
루소가 ‘자연으로 돌아가자’는 식의 발언을 한 뒤로부터 서양화에서는 자연을 본격적으로 묘사하기 시작한다. 이때부터 서양의 화가들은 르네상스 선배들과는 달리 자연을 뒤로 하지 않고, 산수화처럼 거대한 자연 속에 사람들을 자그마하게 묘사했다.





그래서 동아시아의 예술과 서양의 예술이 서로 다른 길을 걸었다고 함부로 말하기가 어려워진다. 이것을 어떻게 설명하고 이해해야 할까? 동아시아와 서양의 예술은 차이가 없는 것일까?



여기에 답하기 위해서는 우선 그림들이 그려진 시기와 그림의 분위기를 자세히 따져 볼 필요가 있다.
사람을 작게 그린 동아시아의 전형적인 산수화는 4세기경부터 본격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한다. 노장 사상이나 유교 철학에서 자연관이 구체적으로 대중화되는 시기이다. 자연을 보는 철학이 구체화되면서 본격적인 산수화가 나타나는 것이다. 반면 사람을 전면에 내세운 르네상스의 인물화는 15세기경에 그려진 것이다. 두 그림 사이에는 1000년의 시간차가 있다. 미학적으로 자연을 부각시킨 것은 동아시아가 압도적으로 빠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18세기경에 유행한 서양의 풍경화들을 보면 일견 동아시아의 산수화와 닮은 것처럼 보이지만 묘사된 자연의 분위기는 천지차이이다. 서양 풍경화의 자연은 거칠고 황량하다. 그 속에서 작게 표현된 사람의 모습은 자연을 즐기거나 누리기보다는 위축되고 공포에 떨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어떤 그림을 보더라도 위태롭다.



모양은 비슷하지만 산수화에서 보여주는 자연관과는 사뭇 다른 자연관에 의한 결과물이란 것을 알 수 있다. 겉으로는 비슷한 것 같아도 동아시아와 서양의 그림에는 자연을 보는 눈이 배후에 깊이 작용하고 있다. 두 지역에서 모두 미학적 공통점들이 있다는 것은 살펴보고 지나가도록 하자. 다른 것도 있지만 비슷한 점도 적지 않다.



<사진>① 자연에 비해 사람을 강조했던 고대의 그림 ② 자연보다는 사람을 앞에 내세운 모나리자   ③ 사람을 작게 그린 동아시아의 산수화  ④ 서양의 풍경화에서 산수화와 비슷한 크기로 묘사된 자연과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