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진 디자이너 키울 의지 있나
2012-11-15정민경 기자 jmk@fi.co.kr
기자의 시각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추계 서울패션위크가 끝난지 한 달이 채 되지 않았건만 굉장히 오래 전 일처럼 까마득하게 느껴지는 것은 왜일까. 봄에는 올림픽공원에서 천막 생활을 했고 급기야 가을에는 서울 이 곳 저 곳을 헤매는 떠돌이가 됐다. 이번에 행사장이 나뉘면서 불거진 문제들은 말로 다 할 수 없을 정도라는 것은 모두들 알고 있을 터. 서울패션위크의 꽃은 1~5년차 신인들의 무대 ‘제너레이션 넥스트’(이하 GN)라고 생각하는 한 사람으로서 이번 행사는 너무도 아쉬웠다. GN에 선발됐다며 들뜬 마음으로 쇼를 준비했던 디자이너들도 이번 행사에 대해 “답답하고 섭섭하다”며 입을 모았다.



기자가 전쟁기념관에서 만난 한 호주 바이어는 자이갤러리에서 열리는 GN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다. 홍보가 부족했던지 안타깝게도 전쟁기념관에서 열리는 서울컬렉션과 패션페어가 전부인 줄 알고 있었다. 자이갤러리에 대해 알고 있었다 해도 두 행사장을 오가는 것은 교통 문제, 시간 관리 등 현실적으로 어려웠다. 결국 가장 주목을 받아야 할 패션 꿈나무의 무대는 당연한 수순처럼(?) 조용히 치러졌다.



뜻을 품고 패션계에 뛰어든 신인들은 서울패션위크에 첫 발을 내디딤과 동시에 좌절의 쓴 맛을 봐야 했다. 서교동 자이갤러리는 근사한 외관에 내부도 멋진 좋은 장소지만, 컬렉션을 열기에는 부적절했다. 한 번의 무대를 위해 많은 노력과 투자를 한 디자이너들의 열정을 표출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관객 100명도 여유 있게 수용하지 못하는 행사장, 특별한 장치 없이 브랜드 로고만 바뀌는 무대, 10m 길이의 런웨이 등 장소가 너무 협소했다. 보다 못한 디자이너가 직접 나서서 뭔가를 시도하려 해도 주최 측은 ‘진행 상의 문제가 생길 수 있다’며 과도한 연출을 저지했다. 결국 모든 무대가 비슷비슷해 신인들의 톡톡 튀는 개성을 찾는 것에 한계를 느꼈다. 특히 이번 시즌 GN 컬렉션은 모두 수준이 높았기 때문에 더 많은 사람들과 공유하지 못한 것이 안타까울 정도였다.



신인들이 가장 원하는 것은 브랜드 인지도를 높이는 것뿐 아니라 해외 바이어와의 만남이다. 애초에 서울패션위크가 내건 목표도 패션 비즈니스 활성화가 아니었던가. 자이갤러리는 바이어를 만날 접점이 없었고, 미팅을 할 만한 장소도 마땅치 않았다.



신진 디자이너들을 배려했다면, 한번 더 이들의 마음을 헤아렸다면, 결코 주 행사장과 동떨어진 장소에서 열지 않았을 것이다. GN에 참여한 디자이너들은 “차라리 전쟁기념관 복도나 외부 광장에서 열었다면, 더 많은 관계자가 볼 수 있었을 것”이라며 아쉬움을 토로했다.



최근 한류 바람을 타고 ‘K-패션’이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그러나 신진 디자이너가 없다면 K-패션의 미래도 예측할 수 없다. 신인 발굴에 대한 중요성은 패션뿐 아니라 문화, 경제, 정치 전 분야에서 심각하게 다뤄지고 있는 문제다.



지난 11일 한국은행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올 3분기까지 문화오락서비스 수지가 3730만 달러의 흑자를 기록했다. 그동안 많게는 5억 달러까지 적자를 보였고, 지난해 같은 기간 2억 1850만 달러 적자를 보인 것과 대조적인 수치다. 최광식 문화체육부장관은 지난달 ‘Tex+Fa CEO 조찬 포럼’에서 “한류 3.0세대를 이끌고 갈 차세대 콘텐츠 중 가장 가능성 있는 산업으로 패션을 지목하고 싶다”며 패션 산업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여전히 GN은 신진 디자이너들의 등용문으로,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행사인 것은 분명하다. ‘힘 없는’ 이들은 어떻게든 이 무대에 서기 위해 노력하고 쉼 없이 도전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패션의 미래를 짊어질 신진 디자이너들을 위한 제도적 장치가 시급하다.



신진 디자이너들이 아무 걱정 없이 신나고 재밌는 무대를 선보일 수 있는 날이 하루 속히 오길 바라며,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기량을 뽐낸 서울패션위크의 모든 디자이너들에게 뜨거운 박수를 보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