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나 ‘자연스러운’ 한국의 자연
2012-11-15최경원 현디자인연구소 대표 chk869@hanmail.net
한국 디자인 기행

풍부한 물, 자연을 아름답게 만드는 원천






강희안의 그림에 있는 사람이 보고 있는 것은 한국 자연의 편안하고 수려한 아름다움이었다. 한국의 자연은 사람들로 하여금 긴장하게 하지 않는다. 어디를 가든 자연은 그 모습으로 태생부터 한국 사람들의 삶을 보듬어 왔다. 문제는 이런 자연이 너무나 자연스럽게 한국 사람의 자연관을 형성했고, 그 속에서 삶의 모든 것들을 오랜 세월 동안 꾸려왔다는 것이다.



유럽, 특히 독일에 가면 물값이 만만치 않다. 우리나라에서도 물을 사먹긴 하지만 유럽에 비할 바가 아니다. 사실 세계의 자연을 일별해 보면 인간이 살아 가는 데에 반드시 필요한 물이 확보되지 않거나 미흡한 곳이 한둘이 아니다. 이는 음식점에서 물을 공짜로 주는 우리나라의 습관으로도 알 수 있다.



서양에 가면 테이블에 자연스럽게 올라오는 물에 대해 적지 않은 비용을 지불해야 된다. 하지만 우리의 자연은 언제 어느 곳에서나 풍부한 물을 제공해 주고 있기에 물 부족국가라는 조사 결과가 피부에 와 닿지 않는다.



풍부한 물은 단지 살아가는 데에 편리함만 주는 것은 아니다. 가뭄이 심각할 때 여행을 다녀 보면 알 수 있다. 아름다운 금수강산도 물이 없으면 완전히 다른 분위기가 되어 버린다. 풍부한 물은 한국의 자연을 아름답게 만드는 중요한 원천이다.





이 아름다운 계곡에 물이 없다면 얼마나 황량해질까? 하지만 우리나라의 자연은 특별한 시기를 제외하고는 사시사철 풍부한 물을 가지고 있고, 아름다운 풍경을 만들고 있다. 이런 아름다운 풍경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그렇지 않은 자연 속에서 사는 사람들과 모든 것이 같을 수 없다는 것은 물을 필요도 없을 것이다. 때문에 한국의 아름다움을 말할 때는 반드시 그 바탕이 되는 자연을 먼저 짚어 보아야 한다. 그 외에 어떤 논리의 틀을 투사 시켜도 한국의 아름다움이나 한국 사람들의 사고방식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서양 문명은 대체로 험한 자연을 극복하면서 19세기의 기계문명을 만들었고, 그것이 가져다 준 혜택이 한국 문화에서 자연이 그랬던 것처럼 많다 보니 그렇지 않은 문명의 결과물들을 폄하시키면서 20세기 세계 역사를 나락으로 떨어뜨렸던 것이다. 그런데 서양에서 그려진 풍경화와 우리의 산수화를 비교해 보면 그 격차는 너무나 분명해 보인다. 어둡고 거친 자연 속에 들어있는 사람들은 얼마나 위태로워 보이는가. 이에 반해 한국의 자연과 그 속에 묘사되어있는 풍경은 편안하기 그지없다. 하지만 우리는 그동안 편안한 자연관을 가진 우리의 문화를 자연의 특징에 대한 고려 없이 일방적으로 외면하고 묵살해 왔다. 그것을 더욱 조장(?)했던 것은 ‘우리 것이 좋다’는 류의 어설픈 설명이었다.





이런 좁은 시야로부터 우리는 한국, 동양을 생각하고 추구하다 보니 정작 중요한 자연은 그저 서양 사람들이 보던 방식 그대로를 수입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무리 한국 문화의 중요성을 강조해도 자기 모순에서 벗어날 수 없었던 것이다. 안견이 이런 그림을 유토피아라고 그렸던 데에는 명확하고 검증된 우주관과 미학관이 반드시 있었을 것이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