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셔널 패션 기업이 봉인가?
2012-08-17김정명 기자 kjm@fi.co.kr
기자의 시각

최근 주요 백화점들이 경쟁적으로 젊은층 고객 잡기에 나섰다.
롯데백화점은 명동 영플라자를 지금까지 백화점에 없는 패션 브랜드들로 채우겠다는 계획 아래 지난 7월 초부터 리뉴얼 공사에 들어갔다. 현대백화점과 신세계백화점도 팝업 스토어와 정규 MD를 통해 『스타일난다』와 같은 온라인 리테일 브랜드와 인디 디자이너, 홀세일 브랜드 모시기에 여념이 없다.



일단 10~20대 소비자들에게 ‘재미없는 곳’이라는 낙인이 찍혀버리기 전에 먼저 대비했다면 좋았겠다는 아쉬움은 있지만 더 늦기 전에 젊은 소비자들의 니즈를 파악하고 그들의 입맛에 맞는 브랜드로 매장을 재구성한다는 노력에는 박수를 보내고 싶다.



새로운 세력(?)을 영입하기 위한 백화점들의 노력은 눈물겹다. 그 동안 백화점 영업을 하지 않았던 브랜드들을 일일이 찾아가 설득하고 그들의 요구사항을 들었다. 이 과정에서 실무진뿐만 아니라 팀장, 임원들까지 총 출동했다.



하지만 원가율이 높은 인디 브랜드 특성상 기존의 수수료로는 설득하기 어려웠다. 거듭된 협의 속에 수수료는 20% 선까지 내려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백화점 영업에 대한 부담 때문에 입점을 고사하는 업체들에게는 인테리어 비용까지 일부 부담하는 등 전례 없는 파격적인 조건을 제시하고 있다.



지금까지 패션업체에게 ‘절대 갑(甲)’으로 군림해온 백화점 업계가 자세를 낮추고 뼈를 깎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는 점은 높이 평가할 만하다. 인디 브랜드와 상생하기 위한 지원책이라는 그럴싸한 명분도 있다. 하지만 한편으로 입맛이 씁쓸해지는 것은 왜일까?



기자는 그 원인을 백화점의 형평성이 또 한번 무너졌다는 데에서 찾았다.
지금까지 백화점들은 ‘명품은 명품’이라고, ‘글로벌 SPA는 글로벌 SPA’라고 온갖 특혜를 주면서 구애를 했다. 이번에는 그 대상이 젊은층이 좋아하는 인디 브랜드들로 옮겨갔을 뿐 백화점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 패션기업들은 여전히 홀대 받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인디 브랜드를 백화점에 넣겠다는 발상은 좋다. 하지만 내셔널 패션기업들이 느끼게 될 상실감 역시 고려해야 한다. 인디 브랜드를 동참시키기 위한 지원책이 필요했다면 직매입 등의 더 효율적인 방법이 있다. 패션기업에게는 매출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강력한 쇄신책을 요구하면서 정작 ‘수수료제’ 라는 구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백화점의 모습이 안타깝다.



내셔널 패션기업은 지난 30여년 간 백화점의 성장과 함께해 왔다. 백화점이 연례행사처럼 꼬박꼬박 수수료를 올리더라도 군말 없이 다 냈다. 수요와 공급, 갑과 을 같은 논리를 떠나 떼려야 뗄 수 없는 중요한 파트너다. “백화점에서 우리한테 이러면 안 되는데 이건 해도 너무한다”는 모 패션기업 경영자의 탄식에 고개가 끄덕여질 수밖에 없는 것도 이러한 배경 때문이다.



지난해 공정위의 수수료 인하 압박 속에서도 대부분의 패션기업은 혜택을 보지 못했다. 이번 영플라자 리뉴얼 과정에서도 기존에 영업해온 30여개가 넘는 내셔널 패션기업의 브랜드들이 방을 빼야 한다. 백화점의 이중적인 잣대에 다시금 실망을 금할 길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