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로 밀려난 삶이 바다를 지배하다
2012-07-20최경원 현디자인연구소 대표  ckw8691@hanmail.net
이탈리아 디자인 기행




베니스의 반전
더 이상 뒤로 물러날 수 없이 바다로 밀려난 베니스 도래인(?)들은 배수진을 치고 베니스를 건설했다. 하지만 이들은 도시건설에 필요한 최소한의 기본 즉, 땅을 갖지 못했다. 그들이 가진 것이라고는 눈 앞에 펼쳐진 드넓은 지중해 바다 뿐이었다. 바다는 자산이 아니라 부채였으며, 도우미가 아니라 방해꾼이었다. 베니스는 그런 바다 위에 땅을 만들면서 세워진 기적의 도시였다.



9세기 즈음에 이르러 베니스는 도시로서의 면모를 어느 정도 갖추게 된다. 그리고 그렇게 필사의 노력으로 도시를 만든 조상들의 은덕 때문이었을까. 그 뒤 11세기 이후부터 15세기 말까지 베니스는 황금시대를 누린다. 동방과의 무역을 하게 된 것이 큰 힘이 되었다. 십자군에 참가했던 베니스 군이 동로마 제국의 수도 콘스탄티노플을 1204년에 점령하면서부터 베니스는 동로마 제국과 지중해 전역의 무역권을 혼자 독차지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곧 베니스의 부는 영국 전체를 능가하기에 이르렀으며, 베니스의 융성은 로마 제국의 부활로까지 일컬어지기도 했다.





바다가 가져다 준 혜택
아이러니하게도 베니스에 성공을 가져다 준 것은, 베니스 건설에 벽이 되었던 바다였다. 베니스는 땅 대신에 바다를 딛고 세워진 비운의 도시이기도 했지만, 그 옛날 바다는 무한한 세계로 나아가는 첨단 고속도로였다. 베니스의 사람들은 이 바다의 장점을 최대로 활용했다. 그들은  바다를 통해 지중해는 물론 영국과 북해를 정기적으로 내왕했고, 중국까지 가는 교역로를 개척했다.



그리고 바다 길 위로 오리엔트의 향신료, 향수, 비단, 공예품들을 가져와 유럽 상류사회에 ‘호사’와 ‘꿈’을 맛보게 했다. 그렇게 베니스는 서유럽 사회와 다른 세상을 잇는 관문이 되었고, 그 결과 황금기를 구가하게 된다.



베니스의 황금기의 중심에는 피도 눈물도 없이 돈만 쫓는 이미지를 가졌던 ‘베니스의 상인들’이 있었고, 베니스 전역에는 이들의 상선들과 외지의 무역선들이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그런 흔적들은 지금도 베니스의 중심이라고 할 수 있는 두칼레 궁전 앞의 선착장에서 확인할 수 있다.



지중해가 베니스를 만나는 정면에 자리 잡은 두칼레 궁전은 베니스의 흥망성쇄를 진두지휘했던 건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