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놀포 디 캄피오와 브루 넬레스키의 인연
2012-04-13최경원  
이탈리아 디자인 기행




브루넬레스키가 설계한 건물들은 피렌체에 즐비한데, 그가 손을 댄 것들은 전부 피렌체에서도 굵직굵직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그가 설계한 건물 중에서는 피렌체 내에서 가장 큰 건물도 있다. 베키오 다리 저 건너 편에 홀로 자리잡고 있는 피티궁이 그것이다. 피렌체를 장악하고 있던 메디치 가문의 건물이 아니라 1450년 메디치가의 앙숙이었던 피티 가문의 의뢰를 받고 설계 한 건물이다. 건물의 정면, 즉 파사드만 200m이니 피렌체에서 가장 큰 건물 일만도 하다.



당시에 피티 가문은 아르노 강을 건너, 피렌체 중심지에서 살짝 벗어나면서도 피렌체 도심을 내려다 볼 수 있는 이곳에다 커다란 궁을 짓고 메디치 가문의 직접적인 공세를 피하고자 했다고 한다. 하지만 메디치 가문을 공격하려 하다가 역으로 당해 피렌체 내에서 사라지게 되고 결국 메디치 가문에 의해 접수된 건물이다. 횡으로 길게 뻗은 모습이나 거친 돌덩어리로 마감되어 웅장하나 비극적인 느낌을 주는 이미지는 이 건물의 그런 내력을 품고 있는 듯 하다.



메디치 가문에 접수된 이후로 1919년까지 피렌체를 통치하는 자들이 줄곧 이곳에서 거주했다고 한다. 같은 브루넬레스키의 건물이라도 이 피티궁은 대단히 정치적인 외형을 하고 있다. 지금은 여러 개의 미술관이 들어 있고, 넓고도 아름다운 보볼리 정원이 있어서 많은 관광객들이 찾아 든다.



피렌체의 꽃, 산타 마리아 델레 피오레 성당, 즉 두오모에 있어서 브루넬레스키는 돔만 얹어놓고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건축가가 되었으며, 영광스럽게 이 성당 지하에 묻히기까지 했다. 다 차린 밥상에 수저만 놓은 것 같은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정작 이 성당의 몸체를 설계하고 건설했던 사람은 아르놀포 디 캄피오(Arnolfo di Campio)이다. 13세기 경에 활약했던 건축가이자 조각가였으니, 양식적으로 보면 고딕시대와 르네상스 초기를 아우르는 연간에 활동했던 사람이다. 르네상스 건축가들이 나올 수 있는 토대를 만들었던 위치에 있었다고 추정할 수 있다. 하지만 피렌체에서 그의 흔적은 단지 밥상만 차려놓은 사람으로만 볼 수 없다. 피렌체에서 볼 수 있는 많은 아름다운 건축물들이 그의 손에 의해 설계되고 지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우선 그가 차린 밥상(?)인 피렌체 대성당을 먼저 손에 꼽을 수 있고, 피렌체에서도 뛰어난 외모를 가지고 있어서 스탕달이 실신할 뻔 했다는 것으로도 유명한 산타 크로체 성당을 빼놓을 수 없다.



이탈리아 고딕 건축 가운데에서도 손꼽히는 건물로서 1294년에 건축을 시작하여 1442년에 완공했다. 게다가 이 성당 안에는 우리가 아는 역사적인 명사들이 묻혀 있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그 유명한 미켈란젤로를 비롯해서 갈릴레오, 단테, 마키아 벨리, 로렌초 기베르티, 조르조 바사리, 로시니 등이 이 성당에 잠들어 있다. 특히 미켈란젤로의 무덤은 초기 르네상스 화가로 유명한 바사리가 설계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성당의 이런 비중에 걸맞게 성당의 디자인은 무척 아름답다. 르네상스를 연상시키는 간결하고도 질서정연한 기하학적 디자인 위에 고딕적인 장식들과 색채들이 가지런하게 조화되어 있어서 여느 성당과는 좀 다른 인상을 준다. 세 개의 문과 그 위에 뚫려 있는 광장은 건물의 눈과 코와 입이 되어 전체적인 표정을 확립하고 있다. 이목구비가 뚜렷한 잘 생긴 인물을 보는 듯하다. 주변 분위기도 고요하다.
피렌체의 다른 곳하고는 달리 주변 건물들이 넓은 사각형 마당을 중심으로 성처럼 둘러쳐져 있어서 바깥 공간과 단절감을 많이 주고 있다. 이 성당을 중심으로 차분하고 성스러운 분위기가 그래서 강하며, 관광지로부터 일정한 거리를 두고 있는 느낌이다. 그런 차분함은 이 공간에 들어선 사람들을 성당 안으로 자연스럽게 흘러 들어가게 한다.



고요한 성당 앞 마당과 차분하면서도 화려한 성당의 정면은 피렌체에서도 매우 독특한 분위기를 형성하고 있다. 이 성당 안에는 메디치가와 적대적이었던 파치가의 예배당이 있고, 산타 크로체 박물관, 화랑과 같은 부속 건물들이 딸려 있다. 파치가 예배당은 브루넬레스키가 설계한 건물 중에서도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건축물이니 브루넬레스키는 아르놀포와는 인연이 깊어도 너무나 깊다고 할 수 있겠다. 여기에서도 브루넬레스키는 수저만 얹어 놓고 있다. 그런데 이 건물에는 다른 건물과는 달리 왼쪽 편에 큰 조각상 하나가 광장을 향해 오만 인상을 다 찌그리며 하나 서 있다. 바로 ‘신곡’으로 유명한 단테 상이다.



피렌체 출신으로 피렌체에 묻혀 있는 풍운아 단테. 베아트리체를 사모하여 ‘신곡’을 쓴 것으로 유명하다. 그의 흔적은 이곳 산타 크로체 성당 뿐 아니라 피렌체 안에서 많이 발견할 수 있다. 여기서 단테는 마치 그의 시적 열정으로 산타 크로체 성당을 호위하고 있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