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루넬레스키, 르네상스를 디자인 하다
2012-04-06최경원  
이탈리아 디자인 기행



로마시대의 고전 건축에 관해 충실히 공부한 브루넬레스키는 1404년 로마로부터 돌아온다. 이때부터 그는 피렌체 대성당의 공사에 간접적으로 간여를 하면서 대성당 건물의 완성에 기여하였다. 고대유적으로부터 배운 그의 해박한 지식은 대단히 큰 도움이 되었던 것 같다. 하지만 그가 이 건물의 돔 설계를 맞게 된 것은 1420년경에 되어서였다. 돔을 제외한 건물의 몸통이 완성되는 데에 시간이 많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원래 피렌체 대성당은 1296년 피사 출신 조각가 아르놀포 디 캄비오(Arnolfo 야 Cambio)가 착공을 시작했다. 1302년에 정면이 완성되었고, 거대한 돔이 들어설 자리만을 남겨놓고 건물이 완전히 만들어진 것이 1420년 경이었으니 몸체를 완성하는 데에만 무려 120년이 걸린 것이었다.



돔의 자리는 지름이 43m. 로마시대의 판테온 신전과 같은 크기로 당시에는 가장 큰 규모였다. 건물이 완성되었을 때까지도 돔을 어떻게 만들지 대책이 없었다. 1418년 돔의 구조에 대해 공모를 하였고, 기다리고 있었던 브루넬레스키는 그동안 연구한 것을 발판으로 현실가능한 제안을 한다. 라이벌 기베르티도 공모를 했다. 1420년 심사위원단은 브루넬레스키를 설계자로 지명하였다. 짜증나는 일은 기베르티도 공동 설계자로 임명했던 것이다. 결국 건축에 대한 이해가 없었던 기베르티는 실력부족으로 사퇴하게 되고 20년 전의 복수를 하며 단독 설계자가 된다. 그리고 어려운 공사를 뛰어난 설계로 극복하고 마침내 1436년 돔을 완성한다.



우리가 볼 수 있는 아름다운 건물이 무려 착공한지 170년 만에 완전히 마무리된 것이다. 대성당의 돔을 자신이 완성하겠다고 결심한지 어언 30년이 지난 후에 자신의 꿈을 완성하게 되었다. 그 후 1446년 그는 영광스럽게도 이 엄청난 대성당에 묻히게 되고 피렌체 대성당을 방문하는 사람들은 자연 그의 노고에 경의를 표하게 되었다.





피렌체 대성당 뿐 아니라 피렌체 곳곳에는 브루넬레스키의 손길이 묻어있는 건축물들이 즐비하다.
브루넬레스키가 최초로 비중있는 프로젝트로 맡았던 건물은 1421년에 설계한 산티시마 아눈치아타 광장에 면해 있는 스페달레 델리 인노첸티(Spedale deli Innoceni) 즉 유럽 최초의 고아원이었다.



르네상스 전성기 보다는 좀 앞선 시점에 살았던 그의 존재가 건물의 외형에서 그대로 느껴진다. 즉 후기고딕과 로마네스크의 느낌이 강한 것이 전성기 르네상스 스타일을 예견하고 있는 듯하다.



피렌체 대성당 근처에 있는 산 로렌초 성당, 즉 메디치가의 무덤이 들어 있는 메디치가문 예배당(Cappelle Medicee)과 연결되어 있는 건물도 그의 작품이다.



아름다운 외형은 피렌체 대성당 다음으로 뛰어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성당 뒤쪽의 아기자기한 돔들의 향연은 건축의 아름다움을 한 껏 느끼게 해준다. 메디치 가문으로부터 설계 의뢰를 받은 것은 1420년 대 였으나 그가 살아생전에 완성을 보지 못한다. 아니 우리도 살아생전에 보지 못할 것 같다. 이 건물은 르네상스 시대 안에 완성되지 못한다. 아마 미켈란젤로가 환생하지 않는 이상은 공사를 다시 할 리가 없기 때문이다.



그의 솜씨가 가장 잘 표현된, 르네상스 스타일을 대표하는 건물로는 산타 코로체 성당 옆에 있는 예배당을 들 수 있을 것이다. 크기는 작지만 삼각형, 사각형, 원을 조형적으로 구성하여 아름다운 외관을 빚어낸 솜씨는 르네상스의 정신을 매우 잘 표현하고 있다. 고딕이나 로마네스크의 기운이 대폭 잦아든 가운데에 향후 전개될 르네상스 건축의 스타일을 한껏 보여주고 있는 모습이다. 이전처럼 규모나 장식으로 승부를 거는 것이 아니라 정신. 건물에 담긴 기하학적 의미와 정제된 형태의 아름다움으로 승부수를 던지는 르네상스 인들의 인문정신이 만든 디자인이었다.



이후 이런 고전주의적 건축은 이탈리아 황금기를 이끌게 되고, 나아가 20세기 현대 이탈리아 디자인의 문법에 결정적인 기여를 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