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메 아욘의 초현실적 피노키오
2012-04-06최경원  
우리를 놀라게 하는 디자인




디자인에 대한 정의가 요즘에 들어서서는 참 많이 변하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요즘은 이런 것도 디자인이 된다.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기능적이지 않은 면이 조금이라도 있는 디자인들은 모두 디자인이 아니라 예술이라는 비난 아닌 비난을 들으면서 왕따 취급을 받았지만, 이제는 이런 설치미술 같은 모양들도 디자인의 범주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디자인은 반드시 쓸모가 있어야 하고, 조금이라도 만드는 사람의 주관이 들어가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던 열혈 디자이너들도 이제는 대놓고 싫다는 말을 하기 어려운 상황이 되어가고 있다. 오히려 그런 주장은 시대에 뒤떨어지고, 디자인의 개념을 협소하게 생각한다고 역차별을 받을 분위기이다. 그렇게 해서 디자인의 개념이나 범주가 확장되고 더 좋은 가치들이 디자인에 들어올 수 있는 길이 열린다면 좋겠는데, 안타깝게도 그 틈새를 악용하는 경우도 적지 않은 것 같다. 기능을 의도적으로 버리면서 예술인 것처럼 행세하는 경우도 있다.



하이메 아욘의 디자인은 그런 점에서 논란이 될 수도 있는 가능성이 큰 디자인이라고 할 수 있다. 비사차(Bisazza) 라고 하는 타일 회사의 밀라노 가구 박람회 전시장 모습인데, 당시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디자인이다. 이 디자인을 통해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디자이너 하이메 아욘은 이후 세계 디자인계의 다크호스로 등극하면서 거장으로서의 명성을 갖게 되었다. 그냥 보기에는 어떤 작가가 자기 하고 싶은 데로 만든 디자인 같은 데 결과는 엄청났다. 그렇다면 이 희한하게 생긴 모양은 어떻게 디자인의 한가운데에서 각광을 받게 되었을까?



우선 이 장면을 보면 피노키오 같은 모양이 거대한 규모로 앉아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초현실적인 장면은 보는 사람들에게 그냥 하나의 예술적인 모양, 특이한 형태로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매우 복잡한 마음의 동요를 불러일으킨다. 자신의 기억 속에 자리 잡고 있는 피노키오의 모습과 그것과는 완전히 다른 크기의 추상적인 모양 간의 간극이 우리의 머리 속에서 강하게 부딪히기 때문이다. 현실 공간 속의 초현실. 어떤 경우가 되었건 이 모습은 사람들의 주목을 끌어내는 데에는 의심할 바 없이 크게 성공하고 있다. 여기서 잠시 이 장소가 이탈리아의 타일 회사 전시장이란 것을 기억해 보자.



이 피노키오 같이 생긴 형태의 표면은 모두 타일로 만들어져 있다. 모양이 예술이든 디자인이든 구성하고 있는 재료는 타일인 것이다. 조그마한 사각형 모양의 타일이 결과적으로는 초현실적인 모양을 만든 것이다. 만일 이 전시장이 사각형의 반듯한 패널에 회사 소개와 타일의 뛰어난 기능만을 설명한 문구나 사진으로만 채워졌다면 과연 이처럼 문제작이 될 수 있었을까? 디자인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황당한 모양이지만 결과를 놓고 생각해 보면 원하는 목적을 몇 수 위의 차원에서 얻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디자인을 통해 비사차는 다른 어떤 전략과 마케팅으로 무장된 디자인적 접근보다 더 한 결과를 얻었다. 세인들의 주목을 크게 이끌었을 뿐 아니라 비싸차의 제품이 단지 제품이 아니라 예술이라는 것을 대중들에게 인식시켰다. 그것도 어떠한 광고나 어떠한 설명도 없이 단지 피노키오 같이 생긴 조각같은 디자인을 통해서. 이 정도면 이 모양을 디자인이라 해도 문제가 없지 않을까? 스페인 출신의 하이메 아욘의 강렬한 개성은 단지 개성에서 그치지 않고, 목적을 정확하게 수행하는 고단수의 전략으로서 작용하고 있다. 이런 디자인의 개념이 확장되어도 크게 걱정할 필요가 없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