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인 그룹 ‘드룩’ 통해 세계적 경쟁력을 갖추다
2011-08-08최경원  
네덜란드 디자인 기행 ⑤

네덜란드의 그래픽 이미지가 여백이 풍부한 단순한 형태에 글자가 커다랗게 들어간 것이라고 하면 산업 디자인에 있어서 네덜란드는 또다른, 그러나 네덜란드 풍이 여전한 그런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 한가운데에 있는 것이 바로 그 유명한 디자인 그룹 ‘드룩(Droog)이다.





산업 디자인 강국
네덜란드는 그래픽 디자인만 두드러지는 것이 아니라 산업 디자인에서도 발군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우선 세계적인 전자제품 회사 필립스가 바로 네덜란드 브랜드이다.



면도기나 헤어드라이어 같은 생활 필수품들을 생산하는 회사로 우리에게 익숙한데, 어떻게 보면 독일의 기업으로 오해하기 쉬운 이름을 가지고 있지만 네덜란드 기업이다. 박지성이 근무(?)했던 히딩크 감독의 축구팀이었던 PSV 아인트 호번의 후원 기업도 바로 필립스이다. PSV가 Philips Sport Vereniging NV 즉, 필립스 스포츠 연합이라는 뜻이다.



아인트 호벤과 필립스는 그래서 매우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그래서 그런지 네덜란드의 아인트 호번 디자인 학교(Design Academy Eindhoven)는 지금 세계적인 산업 디자인 학교로 명성을 높여가고 있으며, 아인트 호벤 공과대학 디자인 학과도 더불어 유명하다.



한 때 독일과 이탈리아 디자인이 세계를 주름 잡을 때는 네덜란드의 존재감이 많이 느껴지지는 않았지만 90년 대에 들어오면서 부터는 네덜란드 산업 디자인은 서서히 점유율을 높여가며 세계 흐름을 주도하려 하고 있는 추세이다.



가슴 아픈 것은 아인트 호벤의 이런 디자인 경쟁력을 감지한 서울시가 서로 협조관계로 디자인 수도기획을 진행하긴 했지만 결과적으로 디자인을 흉내내는 것 이상으로 무엇을 얻었는지 모르겠다.



아무튼 산업 디자인에 있어서 큰 흐름이 네덜란드로부터 나오는 것들이 많다. 그 중에서도 네덜란드의 위상을 세계에 각인시킨 것은 드룩(Droog)이라는 작은 디자인 그룹이라고 할 수 있다.





소박한 디자인
1993년 4월 밀라노 국제 가구 박람회에서 처음 데뷔한 이 그룹은 등장과 동시에 세계 디자인계에 깊은 인상을 남겼다. 이런 디자인을 처음 선보이자 세계 디자인계는 어리둥절하면서도 열광을 보내지 않을 수 없었다. 낡은 이부자리를 고무줄로 묶어서 소파를 만든다는 생각은, 디자인을 상품이나 기술의 산물로만 생각하는 입장에서는 절대 나올 수 없는 것이었다.



드룩은 단지 이상한 디자인을 만든 게 아니라 디자인에 대한 새로운 인식체계를 멋지게 제안한 것이었다.



쓰다 남은 서랍들을 모아서 서랍장이랍시고 내놓은 가구도 마찬가지였다. 이런 디자인을 위해서는 첨단 기술이 필요한 것도 아니고, 수련된 장인의 손길이 필요한 것도 아니었다. 그동안 디자인계가 생각해오고 집착해 왔던 모든 것들이 이 드룩이라는 조그마한 그룹의 산물들 앞에서 길을 잠시 헤매게 되었다.



스타일로 보면 빈티지를 연상케 하지만 스타일만 있는 빈티지의 무뇌적 경향으로 보기에는 너무나 지적이었다. 무엇 보다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감동이 있었다는 것은 그 어떤 첨단 기술을 함유한 디자인들도 넘볼 수 없는 예지를 가지고 있는 것이었다.



당장 눈앞의 돈벌이에 눈이 멀어있는 기업인들에 지쳐있던 디자이너들이나 디자인을 상품 이상이 될 수 없을 것이란 선입견을 가진 일반 사람들에게 드룩의 디자인은 시가 될 수 있고, 추억이 될 수 있는 디자인을 새롭게 보여주었다. 보기에는 소박했고, 때론 볼 품이 없기도 했지만 내면의 창조적인 정신성은 디자인의 역사를 바꿔 놓을 수 있는 것이었다.



네덜란드 디자인은 드룩을 통해 세계적인 경쟁력을 가지게 되었다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