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스러운 비주얼을 버무린다

2011-03-18 최경원 교수 

유럽 디자인 기행 ⑥

영국적인 디자인은 무엇일까? 영국 사람이 하면 영국 디자인일까? 영국적 디자인은 영국 사람들이 사는 한가운데에 들어갔을 때 비로소 제 모습을 드러낸다. 가장 영국적인 삶을 보듬어 안을 때 가장 영국적이지 않을까.





영국스러움의 콜라쥬
영국의 디자인 세계 디자인계에서 차지하고 있는 지분은 적지 않다. 산업혁명이 꽃을 피우기 시작한 시절부터 빅토리아 여왕의 남편인 앨버트 공이 왕립 미술학교를 디자인 학교로 바꾸어 인재를 양성했으니, 영국 디자인은 독일의 기능주의가 탄생하기 훨씬 전부터 자기 존재감을 역사에 아로 새기게 되었다.



그렇게 생각하면 영국에는 최첨단 디자인들이 즐비하고, 도심은 디자인으로 가득 차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정작 영국을 가보면 그런 기대에 부합하는 미래도시는 눈을 씻고 보아도 찾을 수 없다. 대신 사람들의 삶에 자연스럽게 녹아있는 덤덤한 디자인들이 영국의 디자인 전통의 향기를 내 뿜고 있을 뿐이다.



뮤지컬 극장들이 많이 모여 있는 웨스트 엔드 지역을 다니면 영국을 대표하는 뮤지컬들이 평면의 포스터나 광고판으로 전환되어 거리를 장식하고 있다. 그림만 보아도 뮤지컬의 이미지를 확연히 느낄 수 있는 것은 물론이고, 뛰어난 감각으로 조율된 형상과 색들은 단지 뮤지컬이 아니라 영국 디자인의 맛을 충분히 전달하고 있다. 휘황찬란한 컴퓨터 이미지가 아니라 손 맛이 그대로 느껴지는 예술적 감수성은 상업성에 휘둘리지 않는 전통적 디자인이 품격을 느끼게 해준다.



 



오래된 건물 벽에, 새로운 것을 겹쳐 놓더라도 우리처럼 번쩍 거리는 유리나, 뺀질뺀질한 금속성 가득한 이미지로 획일화하지 않는 점도 눈에 띈다. 옆집의 간판과 똑같이 하지는 않았지만, 낡은 건물의 속살을 추하다고 감추려 하지도 않았다. 그래도 그 어떤 신축건물의 무균질 청결함도 넘보지 못할 단정함으로 주변과 어울리고 있다. 말로만 친환경이 아니라 꽃과 식물들을 키우면서 간판을 장식하는 센스는 절로 친환경의 위대함을 느끼게 만들고 있다.



그렇다고 영국의 디자인이 오래됨 만을 추구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회색 빛 시멘트에 금속성 기둥과 에스컬레이터가 작동하는 지하철 역 공간은 회색으로 통일되어있으면서도 미래적이고 반 전통주의적이다. 지하니까 지상의 전통적 분위기와 반대로 만들 수 있지 않았을까 싶다.



 



전통으로 자욱한 영국을 채우고 있는 그래픽 디자인들을 보면 다른 나라와는 다른 특징이 있다. 아무래도 영국의 오래된 것들과 어울리기 위해서는 여백이 많은 정갈한 이미지와 가독성이 지적되었던 것 같다. 그래서 영국 그래픽 디자인 특유의 현대적 인상은, 영국의 전통적 이미지와 대비되는 이미지를 추구하고, 가독성을 위한 넓은 여백들을 챙기는 가운데에서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것 같다. 





런던 거리를 다니다 보면 영국 사람들은 중국만큼이나 붉은색을 좋아하는 것이 아닌가 의문이 들 정도다. 빨간 이층버스는 이제 런던의 아이콘이 되었지만, 붉은 색 버스가 회색의 도심지를 돌 땐 강렬한 빨간색 때문에 눈에도 잘 띄고, 우중충한 도시에 활력을 집어넣는다.
영국의 아름다움은 첨단의 세련됨이 아니라 덤덤한 무게감으로부터 나오는 안정감이 아닌 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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