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깨선에 홀리다
2009-10-23글 최경원 
최경원의 미학으로 본 패션 (49)

목에서 어깨를 타고 내려오는 선은 사람 몸의 여러 부분 중에서도 가장 아름답다. 완만하면서도 가파른 웨이브의 흐름은 보는 사람의 눈을 잡았다 놓았다 하면서 매력을 발산하고 있다. ‘옷걸이가 좋다’라는 말은 이걸 두고 한 표현일까? 


상체를 타고 흐르는 아름다운 어깨선

목을 타고 어깨로 내려오던 선은 어깨 끝 부분에서 한 차례 크게 꺾여진다. 옷에서 실루엣이 옷차림의 인상을 결정한다면, 상체의 어깨 선의 흐름은 옷 전에의 실루엣을 결정한다고 할 수 있다.

어깨 부분이 옷 전체의 이미지를 좌우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옷을 입을 때는 상의의 어깨선이 어떤지를 잘 살펴야 한다.

상의에서 어깨의 선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진다. 큰 과장 없이 우아한 곡선을 이루면서 부드럽게 흐르는 형태가 있다면, 어깨를 실제 이상으로 과장하는 형태가 있다. 어깨를 그렇게 강조하지 않은 어깨선은 우아하면서도 부드러운 여성적인 느낌을 준다.

반대로 어깨를 과장한 옷에서는 단단하고 남성적인 냄새가 물씬 나게 된다. 어깨선이 강조되면 어깨가 커 보이기 때문에 전체적으로는 역삼각형의 실루엣이 만들어지기 때문에 남성적인 분위기가 많이 우러나는 것이다.

그래서 남성복은 이런 효과를 적극적으로 도입하여 아주 옛날부터 이런 사례들이 많이 발견된다. 로마네스크, 비잔틴, 바로크, 로코코 시대의 남성 의상들을 보면 어깨를 넓어 보이게 하여 남성적인 강인함을 강조하려는 시도들이 많이 보인다.

남성을 상징하는 여러 장식적 장치가 없어지자 현대의 남성복들은 다른 어떤 부분보다도 어깨를 강조하여 남성미를 함축적으로 표현하려하고 있다. 특히 재킷에서는 어깨 안에다 심지까지 넣어서 어깨를 더 넓고 단단해 보이게 해왔다.

하지만 꼭 남성복에서만 이렇게 어깨선을 강조했던 것은 아니다. 지금 보기에는 좀 과장되어 보이고 다소 촌스러워 보이기까지 하지만, 1980년대에는 여성복에서도 웬만한 남성복 못지않게 어깨가 강조되었다.

이때의 옷들이 얼마나 힘이 넘쳤으면 ‘파워수트’라는 별칭까지도 얻었다. 그러나 어깨가 강조되면서 여성복에서는 여성스러운 느낌이 상당히 감소되어 버렸다. 그래서 디스코 바지, 어깨에 잔뜩 들어가 있는 힘, 자극적인 원색들로 조합된 80년 대의 패션은 지금의 눈으로는 차마 눈뜨고 볼 수 없을 정도로 촌스러워 보인다.

하지만, 최근 들어서는 이 80년대의 어깨선들이 고스란히 되살아나고 있기도 하다. 마르탱 마르지엘라가 2007년도부터 선보인 파워 수트를 기점으로 여성복에서는 어깨가 조금씩 강조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심지어 가장 ‘핫’하고 ‘엣지’있는 룩을 완성하는데 없어서는 안 될 필수 아이템으로까지 자리를 잡으려고 하는 것 같다. 하지만 뭐든지 과유불급이라. 자기에게 어울리지 않으면 아무리 좋은 옷이라도 달콤한 독이 될 수 있는데, 특히 어깨가 강조된 여성복은 상당히 많은 것을 감소해야 한다.



과장되지만 남성적이지 않은 어깨선

그런데 어깨가 강조된다고 꼭 강인해 보이는 것은 아니다. 여성복에서도 사실 어깨를 강조하여 양다리처럼 부풀어 오른 소매가 유행했다. 빨강머리 앤이 그렇게도 입고 싶어 했지만 메리 아줌마가 옷감 많이 든다고 안 사줬던 퍼프 소매는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남성적이기 보단 여성적 매력을 배가시킨다.

어깨가 과장된 것은 같은 데 왜 어떤 것은 남성적인 느낌이 강해지고, 어떤 것은 여성적인 느낌이 강해질까? 앞의 경우에는 어깨의 선이 다소 직선적이며, 수평방향으로의 동세가 강조되기 때문에 강한 힘이 느껴지고, 퍼프 소매의 경우에는 어깨부분의 과장된 모양이 어깨의 모양이라기보다는 장식으로 보이기 때문에 어깨가 넓어 보이지는 않는 것이다.

오히려 어깨 부분이 과장됨에 따라 바로 아래의 팔이 실제보다 가늘어 보인다. 그리고 목에서부터 어깨로 내려오던 곡선이 팔의 둥근 모양으로 이어져서 부드럽고 우아한 이미지를 더 강화시키기 때문에 여성적인 아름다움은 더 배가되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는 어깨가 강조되면 될 수록 작은 여성의 몸통과 팔뚝은 대비효과에 의해 더 가냘파 보이게 된다.



어깨의 힘을 빼면 우아함이 남는다

어깨선을 과장하지 않고 곡선의 궤적을 그대로 흘러가게 해주면, 아무리 건장한 남성이라도 우아하고 여성스러운 분위기가 만들어진다. 때론 이런 접근으로 최대의 효과를 얻었던 디자이너가 바로 아르마니이다.

남성복이라면 당연히 어깨가 딱 벌어져 보여서, 남성 이미지가 줄줄 흘러야 할 것 같지만, 아르마니는 전혀 반대의 방향으로 갔다. 남성복, 그것도 남성의 재킷 안에 잔뜩 들어 있던 심지들을 죄다 빼버리고, 흐물흐물한(?) 재킷을 건장한 남자들의 어깨에 흘러내리게 했다.

목으로부터 부드럽게 내려오는 선들이 재킷의 선을 통해 그대로 드러나자, 아무리 근육 덩어리의 남자라도 순식간에 지적이고 우아 해보이기 시작했다. 단지 어깨에 들어있던 심지를 뺐을 뿐인데. 아르마니는 세계적인 명성을 얻게 된다.

이처럼 어깨선이 과장되지 않고 곡선적 흐름이 두드러지게 되면, 여성 특유의 부드럽고 온화한 분위기가 강화된다. 따라서 베이직한 여성복들은 대부분 어깨선이 자연스럽고 편하게 흐른다. 하지만 너무 곧이곧대로만 가는 것은 재미없다.

같은 접근이라도 전혀 반대방향으로 적용하면 극적인 반전효과를 얻을 수 있다. 아르마니의 경우에는 여성복에서는 너무나 당연한 접근을 남성복에다 옮겨 놓았기 때문에 획기적인 결과를 얻게 된 것이다.
옷을 입을 때 이런 사실을 잘 활용하게 되면 대단한 결과를 얻을 수 있다. 여성의 어깨선을 과장하는 것도 그런 접근이라고 할 수 있다.

별 것 아닌 것 같아 보여도, 이상에서 살펴본 것처럼 어깨선의 역할은 간단치 않다. 어깨선 하나만으로도 다양한 표현을 할 수 있으며, 특히 실루엣을 만드는 가장 중요한 열쇠이기 때문에 그냥 지나치지 말고 꼼꼼하게 챙겨보아야 할 사항이다. 열쇠가 있으면 문을 쉽게 열 수 있는 것처럼, 어깨선을 제대로 이해한다면 옷을 입는 일이 좀 더 자유로워 질 것이다. 

<다음 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