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생로랑, 고이 잠들다.
2008-06-02 

20세기 패션의 가장 위대한 디자이너라 할 수 있는 입셍로랑이 일요일이었던 지난 1일 세상을 떠났다. 향년 71세. 병명을 밝히지는 않았지만 오랜 지병으로 최근에는 거의 누워 지냈고 세상을 떠나기 일주일 전부터는 식사와 대화도 불가능 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지난 해에도 전혀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채 간혹 휠체어에 몸을 맡긴 모습이 목격되곤 했다.



입셍로랑은 17세의 어린 나이로 크리스챤 디올에 입사하여 디올이 사망한 1957년 22살의 나이에 디올의 수석디자이너로 발탁되어 일대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그리고 두꺼운 검정 색 뿔 테 안경과 말끔한 정장아래 매우 수줍어하고 말수가 적고 사람들 앞에 나서기 주저한 모습에서 호기심과 관심의 대상으로 급부상했다. 그의 이런 성향은 50년 가까이 지속되었는데, 이는 그가 은퇴할 때까지 근 반세기 동안 활동을 하면서도 그에 대한 인터뷰 자료가 거의 남아있지 않은 이유기도 하다.
그의 내성적 성향은 다음의 일화로도 잘 알려져 있다. 디올 사망 이후 성공적으로 그의 빈자리를 채워갈 무렵 입셍로랑은 알제리 독립전쟁에 프랑스군으로 차출된다. 매우 여렸던 그에게 전쟁은 정신적 충격만 남기게 되고 20일 만에 병원으로 옮겨져 신경쇠약 치료를 받게 된다. 이러한 이유로 1962년 입셍로랑은 디올을 떠나게 되고 경제적 후원자이었던 피에르 베르제와 함께 자신의 브랜드인 YSL을 시작한다. 그 이후 2002년 은퇴할 때까지 패션디자인 역사에 길이 남을 만한 여러 가지 라인과 실루엣을 만들어 크게 성공을 이루는데 그의 대표적 라인들로는 사파리룩, 몬드리안룩 그리고 앤디워홀의 팝아트를 표현한 의상 등 셀 수 없이 많은 컬렉션이 성공을 거두게 되고 1966년의 턱시도 수트인 ‘스모킹(Smoking)’은 그 중에서도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입셍로랑은 흑인모델을 가장 먼저 무대에 올린 첫 디자이너도 이기도 하고 1966년 기성복 라인인 입셍로랑 리브고슈(Rive Gauche)를 통해 기성복을 활성화시킨 장본인 이기도 하다.
1993년 YSL브랜드는 다국적 제약회사인 Sanofi에 인수되고 다시 1999년에는 구찌그룹이 인수하게 되는데 이때 구찌그룹은 톰포드에게 YSL의 기성복 라인을 맡기게 되고 입셍로랑은 2002년도 은퇴할 때까지 오뜨꾸튀만을 맡게 된다.
2002년 입셍로랑의 마지막 쇼에는 그가 50년간 디자인한 모든 대표작들을 당시 유명했던 모델들이 다시 입고 나와 그의 마지막을 함께해 주었는데 피날레에 눈물이 가득 고인 그의 영원한 뮤즈였던 까트린 드뇌브와 만감이 교차하던 입생로랑과의 포응하는 모습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은퇴 후 베르제는 입셍로랑이 발표한 의상과 액세서리들을 모아 YSL재단을 만들었는데 거기에는 15000개의 오브제와 5000피스의 의상이 보관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