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준과 동의보감의 비밀3
2007-02-15 

2. 허준의 어린 시절

조선 최고의 명의였던 허준의 어린 시절은 어떠했을까? 알다시피 허준은 비록 본부인이 낳은 적자가 아니라 첩에서 태어난 서자였지만, 손씨 부인이 아기를 낳지 못했기 때문에 형인 허옥과 더불어 적자 대접을 받았다.
특히 어렸을 적부터 총명하고 예의바른 허준이었기 때문에 집안의 귀여움을 독차지했고, 특히 허준의 큰어머니인 김씨 부인은 자신의 친아들인양 허준을 귀하게 여겼다.
그러던 어느 날 허준의 집안에서는 큰 변화가 일어난다. 본부인이던 손씨 부인이 임신을 해서 적자 아들인 허징을 낳았기 때문이다.
집안의 모든 관심은 적자인 허징에게 쏠렸고, 귀여움을 독차지하던 허준도 집안 사람들의 뇌리에서 곧 잊혀졌다. 다만 큰어머니였던 김씨 부인만이 허준을 변함없이 귀여워했다. 그녀 역시 할아버지 소생의 서자 출신이던 큰아버지 허연의 부인이었기 때문이다.
허준이 느낀 신분 한계는 무엇이었을까? 그 당시 서자들은 정식으로 공무원(관인)이 될 수 없었고, 학문을 배워본들 과거시험에도 응시할 수 없었다. 대부분 술과 노름으로 한 많은 세월을 보내야 했다. 물론 몇몇 서자는 기술을 닦아 당당히 장인이 되기도 했고, 기술직 관직에도 올랐다.
또한 어릴 적 말과 놀다가 고추를 물려 고자가 된 이는 궁궐 내시로 특채가 되기도 했다. 그러나 기술자가 천대받고 신분(적서) 차별이 엄했던 그 시절에 이런 호사는 몇몇에 불과했다.
허준의 형도 궁궐의 말을 키우는 사복시에서 내승이란 말단 벼슬을 살았다. 집안의 장남으로 태어나 온갖 호사를 누리다가 결국 말똥이나 치우는 하찮은 사람으로 변해버린 그가 허준의 눈에는 어떻게 보였을까?
어두운 방황의 나날을 보내던 허준에게 한줄기 빛이 내렸다. 의학을 배우면 높은 관직에도 오를 수 있고, 뭇사람들도 구제할 수 있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허준이 태어난 조선 중기는 중국에서 유행하던 유의(儒醫) 철학이 전해진 시기였다.
즉 ‘학문을 닦아 정승에 올라 자신의 큰 뜻을 펴지 못할 바에야 차라리 의술을 익혀 뭇 사람들을 구제한다’는 것이 바로 유의 철학이다.
이는 성리학의 가르침에도 부합되는 길이었기 때문에 당파싸움의 희생양으로 벼슬길이 막힌 선비들이 의술을 배워 백성들을 구제하는 것이 유행이었다.
물론 전통적인 양반 입장에서 볼 때에는 선비가 천한 의술을 익힌다는 것이 용납될 수 없었다. 그러나 시대적 유행처럼 번진 유의철학은 양반들 사이로 깊이 파고들었다.
고위직 양반들도 벼슬을 계속 유지하기 위해서는 건강이 필수적이란 것을 알았기 때문에 ‘양생법’이란 이름의 의술 몇 가지는 터득하고 있을 정도였다. 퇴계 이황도 자신의 의술을 『활인심방』이란 책으로 남겼고, 서애 유성룡도 『의학입문』에 수록된 침법을 독자적으로 연구해서 기록으로 남겼다.
서자의 출신 한계를 딛고 자신의 뜻을 펼 수 있는 길인 의술을 택한 허준. 그의 꿈은 바로 어의가 되어서 모든 벼슬아치들의 존경을 받는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10여세의 허준은 이렇게 해서 의술의 길로 들어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