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0~ 2000년대까지 발달하는 경영 모델 연구

2007-01-26 최종옥/북코스모스 대표 www.bookcosmos.com

경영의 세기 스튜어트 크레이너 지음, 박희라 옮김


지난 100년 동안 우리는 경영이 탄생하는 극적인 모습을 목격해 왔다. 경영은 하나의 분명한 전문직으로 자리잡았으며 일상적으로 분석되고 가능한 모든 각도에서 논평되는 공식적인 활동으로 변화해 왔다. 경영이 20세기의 시작과 더불어 절정을 맞이한 것은 사실이지만 1900년 이전에 존재하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경영은 인류의 문명이 동트기 시작한 바로 그 순간부터 존재해 왔다. 하지만 최근 100년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재조직되고, 분석되고, 검토되고, 공식화되었다. 실로 20세기는 ‘경영의 세기’였다.

제1장 1900∼1910 경영이론의 발굴

프레더릭 윈슬로 테일러는 페욜이 경영의 본질이라는 광범위한 이론 수립에 매달린 것과 달리 실용적인 목표를 가진 문제 해결사였다. 그는 발명가로 공구를 만드는데 사용되는 강철을 처리하는 기술인 '테일러-화이트공정'을 탄생시켜 금속절단에 혁명을 일으키고 대량 생산을 가능케 하였다.
테일러는 미드베일과 베들레헴 강철회사에 근무하며 이른바 ‘과학적 원리'의 토대를 마련한다. 과학적 관리의 원천은 동료 노동자에 대한 철저한 관찰이었다.
테일러는 작업장 내에서 정확히 어떤 일이 일어나고 그것이 얼마나 걸리는지 상세히 검토하기 시작했다. 테일러의 이론을 도입한 워터타운 군수공장은 6인치 포차를 제작하는 비용을 10,229달러에서 6,950달러로 줄일 수 있었다.
테일러의 이론은 세계적 공감을 받았다. 그가 세운 중요한 공은 경영을 하나의 과학으로 만들었다는 점이다.

제2장 1921∼1930 조직의 발견

체스터 버나드는 1927년 뉴저지 벨의 회장이 된 사람이다. 그의 베스트셀러 『경영의 기능』은 오늘날에도 상당 부분 공감을 얻고 있을 정도로 그는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최초로 전문적 경영의 핵심까지 끌어올렸다. 그는 커뮤니케이션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누구나 커뮤니케이션 채널이 무엇인지, 그리고 어디에 있는지 알아내서 모든 사람이 그 조직의 목적에 결속될 수 있어야 한다고 믿었다.
50년에 걸쳐 그는 GM의 조직을 재구성하고 경영 방식을 재창조했다. 그가 남긴 업적은 첫째 자신의 영감을 따르기보다는 유용한 정보를 토대로 의사 결정을 내리는 지극히 전문적 균형감각을 갖춘 지적인 간부 그룹을 만들어냈다는 것이다. 체스터 버나드는 이를 두고 “슬론은 최초의 위대한 전문 경영자였다”고 표현했다.

제3장 1931∼1940 사람의 발견

엘튼 메이요는 오스트레일리아 사람으로 1926년 하버드 경영대학원의 신규 연구 프로그램을 위해 하버드에 합류했다. 그 당시는 과학적 관리가 생산성 혁명을 일으키는 데 왜 실패했는가에 대한 당혹감이 기업 전반에 팽배해 있었다. 과학적 관리의 논리는 너무나 강력하여 반발의 여지가 없었으나 이를 노동현장에 적용되었을 때 노동자들의 사기가 저하되는 일이 종종 벌어지고 있었다. 그러나 기업은 여전히 생산성 극대화만을 원하고 있었다.
호손 연구는 먼저 조명과 생산성에 관한 연구로부터 출발했다. 그리고 연구 결과 의외의 사실들이 밝혀졌다. 첫째, 그룹 내에 영향을 끼치는 사회구조의 다양성이었다. 둘째는 노동자들이 끊임없이 여러 가지 게임에 몰두하고 있었다는 점이며, 셋째, 복잡하게 보이는 개개인 활동의 역학관리였다. 메이요는 “업무상 동료와 지속적으로 결합되고자 하는 인간의 욕망을 경영층이 조금이라도 무시하거나 억제하려고 시도한다면 그 즉시 어떤 형태로든 경영자체의 실패를 초래하게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제4장 1941∼1950 전쟁의 교훈

2차 세계대전은 경영의 실행과 이론의 진화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사건 가운데 하나였다. 전쟁을 지배한 것은 단순한 산업생산만이 아니었다. 전시는 경영 컨설턴트와 경영대학원의 역할을 굳건하게 해주었다. 하버드의 고급 경영 프로그램의 시발점이 된 것은 1943년 전시 경영훈련 프로그램이었다.
패전국 일본 재건의 뿌리에는 강건한 기업가적 정신, 사회적, 인간적 양심을 지닌 경영과 결합된 기업이 있었다. 일본 부흥의 축소판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 소니의 부흥이었다. 1961년 소니 미국지사는 월스트리트에 진입한 최초의 일본기업이 되었으며, 1989년에는 미국 영화의 자존심 콜롬비아 영화사를 사들였다. 마쓰시타 고노스께도 1917년 플러그 어댑터를 만들기 시작해 전쟁의 광풍과 함께 사업 팽창은 지속되었고 420억 달러의 비즈니스, 세계에서 가장 성공적인 브랜드의 하나인 파나소닉(Panasonic)을 보유하게 됐다. 그는 “고객에게 이익이 될 제품을 팔아라. 또한 판매 후 서비스가 판매 전 고객에게 조언을 해 주는 것보다 더 중요하다. 영구적인 고객을 얻는 것은 바로 그런 서비스를 통해서이다”라고 말했다.

제5장 1961∼1970 전략의 이해

피터 드러커는 혁신적이고 풍부한 경영 이념을 제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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