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영방송에서 ‘미스 이탈리아’를 뽑는다?
2006-10-19정인희 금오공대 교수  ihnhee@kumoh.ac.kr

국영방송에서 ‘미스 이탈리아’를 뽑는다?
밀라노 지하철역에서는 아침마다 몇 가지 무가지를 구할 수 있다. <시티>, <메트로>, 나는 읽는다랑 뜻을 가진 <레고>, 으뜸 뉴스라는 뜻의 <뉴스 프리마 피아노> 등이다. 지하철 역 입구에 신문을 수북이 쌓아놓고 무료로 나눠준다. 큰 공공기관 앞에도 이들이 놓여 있다. 주요 뉴스와 날씨, 텔레비전 프로그램, 별자리 운세 등 각종 문화생활 정보들이 담겨있다. 처음에는 ‘문맹’인 처지다 보니 이런 신문을 가져다 읽을 엄두도 나지 않았는데, 어느 날 저녁 텔레비전에서 프랑스와 이탈리아의 축구 중계 방송을 보다가 전반전 끝나고 휴식 시간에 그만 잠이 들어버려 그 결과가 매우 궁금하던 차에 <메트로> 1면에서 그 축구 기사를 보고 냉큼 1부 집어 들고 본 것이 계기가 되어 가끔 이런 신문들을 집에 가져온다. 돈을 주고 사서 보는 일간지들도 있지만 아직 돈을 지불할 만큼 내용을 읽을 수는 없으니까.

어느 날, 집에 돌아와 저녁을 먹으면서 무심코 텔레비전을 켜놓았는데, 마침 ‘미스 이탈리아 2006’을 방송했다. 미스 이탈리아 선발대회는 1년에 한 번 열리는 것이니만큼, 이것이 이 대회를 볼 수 있는 유일한 기회라는 생각이 들어 열심히 텔레비전을 보기 시작했다. 무려 하루 4시간씩 장장 4일에 걸쳐 방송된다는 사실을 그 날 알지 못했다.

9월 18일부터 월·화·목·금 저녁 9시에서 새벽 1시, 마지막 날에는 새벽 1시에 잠깐 뉴스를 하고 다시 한 시간이나 되는 미스 이탈리아 인터뷰 방송. 이탈리아 공영방송은 라이(RAI)인데, 세 개 채널을 가지고 있다. 1방송인 라이우노(RAIUNO>·2방송인 라이두에(RAIDUE)·3방송인 라이트레 RAITRE. 미스 이탈리아 2006은 처음부터 끝까지 1방송인 라이우노에서 방송되었다. 만약 한국 KBS 1 프로그램에서 미스 코리아 선발대회를 이런 식으로 방송한다면 큰 사회적 물의를 일으킬 것이 분명하다.

4일간 중계되는 미스 이탈리아 선발대회
그럼, 이렇게 거창하게 진행되는 프로그램에서 미스 이탈리아는 어떤 과정을 거쳐 선발되는가? 사실 미스 이탈리아 2006 이전에 어느 날 텔레비전에서 지역 예선전 같아 보이는 것을 보면서 매우 놀랐는데, 후보를 한 사람 한 사람씩 무대로 불러낸 다음 ‘너는 떨어졌다’, ‘너는 계속 남아있을 거다’, 하고 일러주는 것이다. 우리나라 문화에서라면 합격자 이름만 부르고 말 일이지 떨어진 사람에게 일일이 너는 떨어졌다고 ‘친절히’ 말해주지는 않으니까.

그러나 한편으로 생각해 보면, 이는 낙방하는 후보들에게 매우 바람직한 방식이기도 하다. 한 번이라도 카메라에 얼굴을 더 내밀고, 가장 자신 있는 표정을 지으며 웃는 순간 누군가 그녀를 관심 있게 바라보고 있을 기획자나 연출자, 감독이 있을지도 모르니 말이다.

미스 이탈리아 방송 첫째 날, 각 지방 대표로 뽑힌 21명을 제외한 나머지 후보 80명이 한 무대에 섰다. 색을 열대여섯 가지로 달리한 같은 디자인의 비키니 차림으로. 그리고 음악이 나온다. 퀸의 <WE WILL ROCK YOU>. 후보들은 일제히 오른손으로 왼쪽 어깨를 살짝 두드리며 장단을 맞춘다. 컴퓨터가 뽑은 번호의 후보를 카메라가 비춘다. 80명 후보의 번호는 22번부터 101번 사이. 뽑힌 번호의 후보가 무대 가운데로 나온다. 사회자가 몇 번과 겨루겠냐고 물으면 다른 후보 한 사람의 번호를 지목한다.

“어디 살고, 몇 살이고, 하는 일은 뭐고, 취미는…”
이탈리아에서는 대부분의 프로그램 사회를 혼자서 보는데, 미스 이탈리아 방송도 마찬가지다. 매우 유명한 것으로 판단되는 남자 사회자 카를로 콘티(Carlo Conti)가 두 후보에게 자기 소개를 시킨다. 자기소개 내용은 통상적인 것이다.

다음은 장기자랑. 장기자랑을 유형별로 분류해 보면, 가장 많은 것이 춤이다. 다음이 성대 모사와 노래. 그 밖에 시 낭송, 피아노 연주, 요리, 유도 같은 것을 무대 위에서 보여준다. 다른 장기 자랑은 모두 비키니 차림으로 하는데 춤을 출 때만은 짧은 스커트를 덧입고 나온다. 그러면 사회자가 “발리(balli)?” 하고 묻고, 출연자는 “발로(ballo).”하고 대답한다.

이탈리아어의 모든 동사는 인칭과 단 복수에 따라 어미가 변하는데, 1인칭 단수는 어간에 ‘o’가 붙고 2인칭 단수는 ‘i’가 붙는다. 또한 이탈리아어에는 의문문 형식이 별도로 없고 끝을 올려주면 질문이 된다. 문장에서 주어는 생략하는 경우가 많다. ‘춤추다’라는 동사는 ‘발라레 ballare’로 “(너는) 춤을 추니?”는 “balli?” 이고 “(나는) 춤을 춘다.”는 “ballo.”

두 사람의 장기자랑이 끝나면 한 사람씩 워킹을 한다. 이 모든 과정이 진행되는 동안 이탈리아 전국의 시청자들은 전화 투표를 하고, 두 사람의 워킹이 모두 끝나는 순간 사회자는 ‘스톱’을 외친다. 그때부터 컴퓨터가 표를 집계하는데, 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