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업계, ‘액티브 시니어’를 잡아라
2013-06-17김하나 기자 khn@fi.co.kr
베이비부머 은퇴 맞물려 관련 시장 확대



“젊어 보이는 컬러로 추천해주세요.” 레포츠 마니아인 한 중년 남성이 『제비오』에서 쇼핑하고 있다.


‘NO-老 세대’, 캠핑·바이크 등 레저 활동 즐겨



건강하고 활동적인 연장자, 액티브 시니어(Active Senior)가 소비 시장의 ‘큰 손’으로 떠오르고 있다. 액티브 시니어는 기존의 장년층과 달리 좀더 역동적으로 자신의 삶을 즐기는 50~60대를 지칭한다. 과거의 이들 세대가 가벼운 여가와 소일거리 등으로 주거지를 크게 벗어나지 않았던 반면 이들은 캠핑, 바이크 등 아웃도어 스포츠를 통해 역동적인 레저 활동을 즐긴다. 최근엔 이들을 가리켜 늙는 것을 거부한다는 의미로 ‘노노(No-老) 세대’라는 신조어까지 등장했다. 신 소비층으로 떠오른 액티브 시니어에 대해 면밀히 취재해 봤다.



서울 광진구에 사는 김상현(59ㆍ가명)씨. 지난 6일 모처럼 휴일을 맞은 그는 아내와 함께 ‘젊음의 거리’ 명동을 찾았다. 명동에 도착한 김씨가 가장 먼저 들른 곳은 아웃도어 전문 매장 『제비오』. 돌아오는 주말 아내와 둘 만의 캠핑을 떠나기 위해 1주일 전부터 인터넷으로 필요한 용품을 꼼꼼히 체크해 두었다.



김씨는 매장 직원의 친절한 안내를 받으며 「스노우피크」 2인용 텐트와 「콜맨」 식기류, 「마무트」 바람막이 재킷 등 인터넷에서 봐두었던 용품들을 장바구니에 담았다. 매장에 들어설 때부터 눈에 띄었던 미니 캐노피텐트도 고민없이 구입했다. 가격이 저렴한 데다 가벼운 나들이용으로 유용할 것 같다는 생각에서다.



김씨의 다음 행선지는 인근 롯데백화점 6층의 「K2」 매장. 회사 동료가 적극 추천한 슈즈 ‘플라이워크’를 구입하기 위해서다. 컬러와 사이즈별로 신어보고 가장 마음에 드는 ‘제타 블루’를 선택했다.



김씨가 이날 쇼핑하는 데 들인 비용은 90여 만원. 100만원에 가까운 지출을 하기까지 채 3시간이 걸리지 않은 셈이다. 적지 않은 돈이지만 자신을 위한 투자라는 생각에 전혀 아깝지 않았다. 집으로 향하는 김씨의 얼굴에 웃음꽃이 활짝 피었다.



◇ 시니어, 패션시장 지형 바꾼다



지난해 CJ오쇼핑에서 「구찌」 등 럭셔리 상품의 구매자 중 절반 이상이 액티브 시니어였다. 50대가 33%, 60대가 21%를 차지했다. 이처럼 액티브 시니어의 구매력은 홈쇼핑 럭셔리 브랜드의 구매 비율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액티브 시니어는 외모와 건강에 관심이 많고, 여가ㆍ사회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50대 이상의 중산층을 말한다. 비교적 넉넉한 경제적 여유와 은퇴 후 여가 시간이 늘면서 바이크나 캠핑 등 활동적인 레저 활동을 즐기기도 한다. 본인의 건강, 미용, 자기 계발에도 아낌없이 투자한다.
이들은 과거 소비의 핵심층이 아니라는 점에서 유통업계에서 소외되는 경우가 일반적이었지만, 최근에는 2030 못지 않은 소비 시장의 큰 손으로 부각되고 있다.



이들의 소비 파워는 아웃도어 시장에서 두드러진다. 지난 10년간 두 자릿수 성장률을 이어오며 연간 6조원 규모로 확대된 아웃도어 시장의 성장 역시 액티브 시니어의 소비 확대와 무관하지 않다.
특히 최근 이들은 캠핑 시장의 주도층으로 떠올랐다. 캠핑카 시장이 5000억원으로 성장하기까지 구매력있는 시니어 캠퍼의 역할이 컸다. 2008년 300여 대에 불과하던 국내 캠핑카 등록대수는 2009년 169대, 2010년 344대, 2011년 516대, 2012년 464대가 추가되며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다. 올해 3월까지 111대가 등록했다.         



지난 3월 서울 중구에 오픈한 아웃도어ㆍ스포츠 전문 편집숍 『제비오』의 실구매층 역시 40~50대의 직장인 남성들이다. 60대 이상의 구매 비율도 30%가 넘는다. 이마트의 스포츠빅텐도 구매층의 60%가 50~60대 남성으로 구성됐다.
 
◇ 유통가 액티브 시니어 잡기에 분주



지난 연말 현대홈쇼핑 관계자들은 ‘스위스 밀리터리 방한부츠’ 방송 후 CRM 조사 결과를 보고 깜짝 놀랐다. 방한화의 특성상 외부 활동이 잦은 30~40대 구매가 대부분일 거라고 예상했던 것과 달리, 50~60대가 전체의 72%를 차지했기 때문이다.
이 상품은 장년층 선호에 힘입어 방송 하루만에 9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연이은 방송에서도 대박을 터뜨리며 두 달 동안 62억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2030 세대의 전유물로만 여겨졌던 소셜커머스 시장에서도 50대 이상 중장년층의 구매력이 상당하다. 소셜커머스 티몬에 따르면 지난해 50대 이상 고객의 매출 비율은 3.83%였다. 하지만 객단가에서 50대 이상은 12만7432원으로 20대(8만3193원), 30대(11만2644원), 40대(12만1043원)를 제치고 1위에 올랐다.



액티브 시니어의 폭발적인 구매력을 파악한 유통업계는 5060 잡기에 발 빠르게 나섰다.
GS샵은 최근 액티브 시니어를 겨냥한 별도의 온라인 쇼핑몰 ‘오아후(oahu.gsshop.com)’를 오픈했다. ‘오십대부터 시작하는 아름답고 후회 없는 삶을 위한 라이프스타일 쇼핑몰’이란 의미의 오아후는 업계 최초로 시니어 대상의 맞춤형 큐레이션 서비스를 제공한다.



14폰트 이상의 큰 글씨와 기존 온라인 쇼핑몰 대비 1.8배 확대한 이미지를 배치한 점이 특징이다. 전용 무료전화 서비스를 통해 전문 상담원이 전화로 쇼핑의 전 과정을 안내해 주고, 컴퓨터 조작이 힘든 고객은 상담원이 원격 제어로 편하게 쇼핑할 수 있도록 했다. 50대 고객이 인터넷 쇼핑을 보다 쉽게 즐기도록 배려한 것이다. 



◇ 젊어진 시니어, 패션기업 대응은 걸음마?



롯데백화점은 최근 2년간 본점에서 운영하던 ‘실버 기프트 편집숍’을 중단했다. 재작년 시니어 산업 규모가 커질 것으로 전망, 5060세대를 겨냥해 건강보조식품과 의료용품, 가발, 패션 용품 등을 한데 모았지만 예상외로 판매 실적이 저조했던 것이다.



박상우 롯데백화점 과장은 “실버 편집숍의 메인 타깃인 50~60대 시니어들은 정작 스스로를 노인이나 실버세대로 인식하지 않고, 10세 이상 젊다고 생각한다”면서 “젊은 패션, 감성을 추구하는 5060세대들이 대놓고 실버용품을 파는 매장에 매력을 느끼지 못한 것 같다”고 분석했다.



그렇다면 5060세대들은 옷을 사러 어디로 갈까. 실버매장에서 등 돌린 이들은 뜻밖에도 중년을 위한 보정 프리미엄 청바지나 30~40대를 타깃으로 한 컨템포러리 브랜드, 젊은 층에게 인기인 SPA, 아웃도어를 찾는 것으로 나타났다. 나이는 들었지만 감성만은 여전히 30~40대 못지 않다는 것이다.
롯데백화점에 따르면 지난해 20~30대가 주 타깃인 컨템포러리 장르에서 가장 높은 신장률을 기록한 것은 60대(29%)와 50대(27%)였다. 반면 엘레강스와 시니어는 40~50대는 물론 60대에서도 역신장을 기록했다.



이런 경향은 일찍이 일본 패션업계에서도 나타났다. 일본 패션업계는 2000년대 초반부터 은퇴한 중장년 층이 새로운 소비 주체로 떠오르면서 액티브 시니어를 상대로 다양한 전략을 내놓았다.
 
일본의 트렌드를 주도하는 이세탄백화점은 2009년 1020과 5060을 동시에 잡기 위한 편집숍 『잇걸』을 오픈했다. 도쿄 이세탄 본관 2층에 마련된 이 곳은 ‘딸과 엄마가 공유할 수 있는 패션 브랜드’에 MD의 역점을 두었다. 몸매ㆍ피부 관리로 동안인 데다가 패션에 있어서도 젊은 감성을 추구하는 액티브 시니어의 소비심리를 간파한 것이다.



그러나 국내 패션업계는 점차 확대되는 시니어 시장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다. 특히 여성복과 남성복에서 액티브 시니어를 제 때 공략하지 못해 아웃도어 브랜드가 확장하는 시장을 독식하고 있다는 것이다.



업계 전문가들은 “30~40대 취향의 세련된 브랜드 이미지를 바탕으로 폭넓은 사이즈를 제공하고 소재도 활동이 편안한 고기능성 소재를 사용하는 등의 세심한 노력이 필요하다”면서 “이 밖에도 5060세대 체형에 맞춘 패턴 개발과 스포티브한 감성 도입 등 여러 방면에서 연구와 시도가 계속되어야 새로운 소비자를 잡을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