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와 함께 변화하는 CEO 비즈니스룩
2019-08-01박진아 IT칼럼리스트 
럭셔리 캐주얼, 실리콘밸리 사업가들이 사랑하는 스타일


故스티브 잡스는 본인이 창업한 애플에서 쫓겨났다가 1998년 복직한 이후부터 검정색 터틀넥 상의를 입기 시작했다. 언뜻 소박하고 심플해 보이는 그 검정 상의는 잡스가 일본 패션 디자이너 이세이 미야케에게 직접 주문한 자신만의 유니폼이었다.


월터 아이작슨의 잡스 전기에 의하면, 이것은 1980년대 초 일본을 방문해 아키오 모리타 소니 회장을 만나 사내를 둘러보던 중 직원용 유니폼에서 감명을 받은 아이디어다.


스티브 잡스가 입던 검정색 터틀넥 상의는 잡스가 일본 패션 디자이너 이세이 미야케에게 직접 주문한 자신만의 유니폼이다.


'럭셔리 패션'과 '실리콘밸리'. 쉽게 조화가 상상되지 않는 이 단어가 결합된 결정체는 바로 샌프란시스코의 '실리콘밸리'다. 이 곳에서 근무하는 이들이 입는 패션은 오늘날 현대인이면 누구나 연출하는 글로벌 패션 트렌드가 됐다. 편하게 입던 면 티셔츠, 거리 부랑아의 전유물로 여겨지던 후디, 스니커즈의 표준이 된 올버즈(Allbirds) 운동화는 현재 보편적인 일상복이 됐다.

실리콘밸리 테크 산업의 중추적 주인공들인 컴퓨터 엔지니어와 기업가들은 이미 1960년대부터 캐주얼한 짧은 소매의 면 티셔츠, 후디 상의를 청바지에 받쳐 입고 운동화를 신은 이른바 '캘리포니아 스타일'을 고수해왔다. 이는 불필요한 과시를 피하고, 시간과 장소를 가리지 않는 실리콘밸리의 젊고 역동적인 비즈니스 문화를 일축하는 실리콘밸리만의 '테크 시크(tech chic)' 스타일인 셈이다.


캐주얼룩으로 출근하는 미국 실리콘밸리 근무자들



◇ '브루넬로 쿠치넬리' 실리콘밸리를 매료시키다


지난 6월 이탈리아의 럭셔리 패션 브랜드 '브루넬로 쿠치넬리(Brunello Gucinelli)'는 소셜미디어를 통해 본사가 위치한 솔로메오 마을에서 실리콘밸리의 유니콘 최고 경영자들을 초대해 비즈니스 조언 및 고문 행사를 가졌다고 발표했다. '쿠치넬리'는 샌프란시스코 테크 산업의 사업가들과 친분을 나누고 패션 코디 상담까지 해주는 21세기형 맞춤 재단사 역할을 자처했다.


‘브루넬로 쿠치넬리’ 본사가 위치한 ‘영혼의 고을’ 솔로메오에서 열린 ‘영혼과 경제에 관한 심포지엄’


현재 ‘브루넬로 쿠치넬리’는 실리콘밸리 억만장자들이 가장 좋아하고 많이 입는 단골 패션 브랜드로 그 위상이 달라졌다. 시간과 공간, 용도의 구분 없이 품위 있는 실리콘밸리 경영인을 위한 편안하면서도 고급스럽고 실용적인 디자인 때문이다. 캐주얼하지만 고급스러움을 풍기는 이 브랜드의인기 비결은 소재와 피팅에 있다.


특히 최근 실리콘밸리 인사들 사이에서 인기 높은 디컨스트럭티드 재킷과 트레이너 팬츠는 '브루넬로 쿠치넬리' 창업자가 직접 수급한 천연 고급 실크, 캐시미어, 모를 사용해 전통 이탈리아 재봉장인들이 수작업으로 소량만을 생산한 제품이다. 일부 품목의 경우 가격표를 달지 못할 정도로 희소 가치를 지니고 있다. 이러한 스토리텔링이 뒷받침된 가격 정책은 '쿠치넬리'의 높은 매출을 견인하는 성공 열쇠가 되고 있다.


◇ 성공한 남자는 럭셔리 캐주얼을 입는다?

소박해 보이는 페이스북 창업자 마크 주커버그가 청바지와 함께 입는 회색 티셔츠는 장당 300달러에 맞춤 주문된 '쿠치넬리' 제품이다. 세계 최고의 부자 중 하나인 제프 베조스 아마존 창업자는 '쿠치넬리' 디컨스트럭티드 재킷을 즐겨입는다.

이 재킷의 가격은 최소 2500달러(약 300만원), 시그니처 캐시미어 상의는 2000달러, 특수 처리된 송아지 가죽과 스웨이드 소재로 만들어진 캐주얼 구두는 켤레당 800달러를 오가는 럭셔리 제품들이다.


‘브루넬로 쿠치넬리’의 럭셔리 캐주얼룩


'쿠치넬리' 정장의 열렬한 팬으로 알려져 있는 세일즈포스 창업자 겸 최고 경영자인 마크 베니오프는 매년 개최하는 샌프란시스코 드림포스 컨퍼런스에 단골 기조연설자로 '쿠치넬리' CEO를 초대한다. 물론 실리콘밸리의 억만장자 창업자와 최고경영자들이 선호하는 하이엔드 럭셔리 패션 브랜드는 '쿠치넬리'뿐만이 아니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사티아 나델라 최고경영자는 '로로 피아나' 의류와 '랑방'의 스니커즈를 즐겨 신는다. 이들 모두 점잖은 무채색으로 'Simple & Classic'을 지향하는 럭셔리 브랜드다.

과거 고액 연봉과 화려한 라이프스타일을 누리던 자본주의의 승자들이라 할 수 있는 은행가들은 값비싼 맞춤 정장과 가죽 구두로 그들이 성취한 부와 성공을 과시했다. 

그러나 테크 산업이 혁신과 경제성장을 주도하는 시대로 접어들면서 이 산업의 억만장자와 투자자들은 오늘도 '쿠치넬리'의 럭셔리 캐주얼을 입고 사무실, 미팅, 연설, 파티 장소를 활보하며 '고급스런 취향'을 갖춘 성공한 남자로 인정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