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석우의 보이후드> 아웃도어 라이프스타일이 하이엔드 패션과 만날 때
2018-06-19 yourboyhood@gmail.com
홍석우 패션 에세이스트

크리스털 라이트(Krystle Wright)라는 인물이 있다. 오스트레일리아 출신 영상 작가이자 감독으로, 특히 모험 사진 분야에서 유명하다. 얼마 전 넷플릭스 오리지널 다큐멘터리 시리즈 <빛으로 그린 이야기(Tales by Light)>에서 그가 출연한 에피소드를 보았다. 호흡 장비 없이, 프리다이빙으로 뛰어든 바다 깊은 곳에서 아름다운 초상 사진을 찍고, 까마득한 절벽에 달랑 설치한 줄 위에 선 익스트림 스포츠 선수들을 절벽과 같은 높이의 암벽에 기대서 담아낸다. 미국 유타주에서 펼친 패러글라이딩 촬영은 심지어 큰 부상으로 이마에 짙은 흉터를 남긴 재도전이었다.


익스트림 패션의 영감
크리스털 라이트 같은 모험 사진가들이 추구하는 패션, 즉 스타일은 무엇보다도 ‘실용성’에 중점을 둔다. 오지보다 더한 지방에서 멋을 부린다 한들, 번화한 도시 거리처럼 사람들의 이목을 끌 이유가 없다. 그렇다면 흔히 생각하는 유행과 트렌드 같은 단어가 극한을 추구하며 땀내 가득한 장르에 속한 이들과는 전혀 관련이 없을까? 단언컨대 ‘노(No)’에 수렴한다. 익스트림 스포츠를 일군 개척자들과 모험가들은 패션이 오랜 시간 동안 스타일의 영감으로 삼은 인물이었다.


고급 기성복과 익스트림 패션
요스케 아이자와가 만드는 ‘화이트 마운티니어링’은 파리 남성복 패션위크에 나서는 대표적인 일본 브랜드 중 하나이다. ‘몽클레르’부터 ‘아디다스 오리지널스’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장르의 세계적인 패션 하우스와 활발하게 협업했다. 설산을 등반한다는 직관적인 브랜드 이름처럼, 인류가 행하는 야외 활동 중에서도 제법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산악 등반과 아웃도어 패션에 뿌리를 둔다.

이미 우리가 아는 전문 아웃도어 브랜드와 다른 점은 고급 기성복, 즉 하이 패션을 지향한다는 점이다. 미국과 유럽 문화를 발 빠르게 받아들인 일본은 한국에서 본격적으로 익스트림 스포츠와 아웃도어 패션 붐이 일기 전부터 체계적으로 시장이 발달했다. 등산부터 낚시와 하이킹, 캠핑 등 아웃도어 라이프를 전문으로 다루는 잡지 ‘고아웃’과 ‘아웃스탠딩’ 등은 물론, 후미히코 오카베처럼 아웃도어 스타일을 전문으로 다루는 패션 스타일리스트들이 활발하게 활동할 정도다.


‘화이트 마운티니어링’ 2018 가을/겨울 컬렉에서 등반 장비인 ‘로프’를 든 모델


2018년도 가을/겨울 시즌에도 ‘화이트 마운티니어링’은 ‘등반’ 장비들을 컬렉션 곳곳에 녹이며 익스트림 스포츠의 정체성을 드러냈다. 거의 모든 모델이 로프를 어깨에 메고, 재킷과 셔츠에 카라비너와 퀵드로우를 달았다. 마운티니어링 재킷과 아노락 재킷에는 고어텍스 등 전문 산악 브랜드 못지않은 첨단 소재를 쓰면서도, 도심에서 입고 다니는 일상복을 전제로 한다. 방한용 바지에 두꺼운 울 양말을 신고, 활동적인 스니커즈를 결합하는 ‘어반 익스트림’ 스타일이다.


실제로 ‘화이트 마운티니어링’의 익스트림 스타일은 일본뿐만 아니라 서울과 뉴욕, 파리와 런던 등 다양한 도시에서 인기를 끌었다. 가격대가 낮은 편은 아니지만, 유행을 좇는 패션이 아니라 도심과 교외를 오가는 라이프스타일을 즐기는 이들에게 더욱 호소하는 매력이 가득하기 때문이다.
‘루이비통’에서의 여정을 마무리하고 ‘디올 옴므’의 새로운 아티스틱 디렉터에 취임한 킴 존스는 동시대 주류 패션 디자이너 중 ‘여행’과 익스트림 패션을 꾸준히 다뤘다. 유서 깊은 패션 하우스의 수장이기 전부터 펑크 문화와 언더그라운드 음악, 현대 의복에 이르는 열정적인 문화 수집가로 알려진 이 영국 남자는 어린 시절 아버지를 따라 남미와 아프리카를 오가며 살았다. 방랑자 혹은 유목민을 뜻하는 ‘노마드’라는 단어는 고급 여행용 트렁크로 출발한 브랜드만큼이나 킴 존스의 마지막 ‘루이비통’ 남성복 컬렉션에 어울린다.


‘루이비통’ 2018년도 가을/겨울 컬렉션은 모험과 여행을 향한 사랑과 헌사로 가득 찼다. 정교하게 지은 수트와 최고급 캐시미어를 사용한 스웨터도 보였지만, 쇼에 선 모델들은 음각으로 LV 로고를 새겨 넣은 산악용 트래킹 부츠를 신고, 네온 색상과 차분한 베이지색을 섞은 아웃도어 점퍼에 루이비통 모노그램 가득한 타이츠를 겹쳐 입었다. 디지털 프린트로 넣은 암벽 무늬 상의 목선에는 킴 존스 루이비통의 상징과 다름없던 V 라인을 넣었다. 안경 다리에 보호 스트랩을 단 선글라스와 챙 넓은 모자는 영락없는 호화 모험가의 옷차림이었다.


‘오프화이트’의 인더스트리얼 벨트. 산업용 부자재에 큼지막한 로고를 새겨 스테디셀러가 됐다.


여성복과 조우한 익스트림 패션
물론 익스트림 스포츠와 아웃도어 라이프스타일에서 영향을 받은 패션이 남성만의 전유물은 아니다. 되려 2018년에는 이러한 종류의 라이프스타일에서 영향을 듬뿍 받은 여성복들이 눈에 띈다. 좀 더 실용적으로 패션에 접근하는 젊은 디자이너들이 가득한 뉴욕 패션위크에서 그 모습은 두드러진다.

상업성을 대단히 중시하는 뉴욕 디자이너들은 여성 고객이 그들의 브랜드를 걸치고 진짜 모험을 떠날 거로 생각하진 않는다. 뉴욕의 터줏대감 ‘알렉산더 왕’은 익스트림 스포츠의 진취적인 이미지를 자신의 고급 여성복과 세련되게 결합한 스타일링에 초점을 맞췄다. 몇 시즌 째 아디다스와 성공적인 협업을 이어가는 디자이너답게, 바이크 팬츠 디자인에 가죽 패치워크와 지퍼를 달고, 삼선을 강조한 레깅스를 조합했다. 속옷으로 쓰이는 실크 슬립에 대충 소매를 말아 올린 흰색 티셔츠가 함께하니, 영락없는 밀레니얼 세대 소녀의 스트리트 웨어가 됐다. 새침한 듯 귀여운 가죽 가방에 풍성한 어깨 실루엣의 수트 재킷을 걸치고, 허리춤에 트랙탑 재킷을 두른 스타일링 역시 어반 익스트림 패션의 뉴욕 스타일 모험이었다.


청년문화와 융합하는 익스트림 패션
‘아웃도어’라는 단어가 주는 모험과 도전이 극한 상황을 즐기는 익스트림 스포츠와 제법 가까이 존재하는 걸 떠올리면, 청년문화(유스 컬쳐)의 다양한 상징이 이러한 패션과 끊임없이 영향을 주고받는 것은 놀랍지 않다. 실제로 동시대 가장 역동적인 패션 아이콘들은 ‘전통적인’ 의미의 패션을 탈피하고 새로운 시각을 자기 세대와 공유하기 위해 아웃도어 패션을 수용한다.

‘루이비통’ 남성복 아티스틱 디렉터로 취임하면서 경력 정점을 찍은 버질 아블로는 지금 자신을 있게 한 ‘오프화이트’의 ‘정체성’ 중 하나로 일반 기성복에 쓰이지 않는 산업용 부자재를 택했다. 스테디셀러 ‘인더스트리얼 벨트’는 몸에 편하고 자극적이지 않은 소재를 지향하는 기존 하이패션과 차별한다. 뚜렷한 타이포그래피는 로고가 득세하는 요즘 하이엔드 스트리트웨어 자체이며, 중앙에 박은 붉은 바늘땀과 체결하는 육중한 금속 고정 부위는 뻔한 것을 거부하고 새로운 자극을 갈구하는 젊은이들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실제로 포스트-오프화이트 시대 패션 디자이너들은 산업용 벨트를 비롯한 비 패션 디테일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며 이 기세를 점점 더 확장하고 있다.


라이프스타일과 아웃도어 패션
아웃도어 패션이 사람들에게 점점 더 친숙하게 다가서는 데는 여러 이유가 있다. 먼저 ‘야외 활동’과 연계한 라이프스타일, 여가를 즐기는 방식이 더 다양해졌다. 캠핑과 하이킹은 특별한 행위가 아니며, 실용성은 물론 심미적인 의미로 가볍고 기능적이면서 일상과 여행에서 동시에 역할을 해내는 스타일이 하나의 장르처럼 자리 잡았다. 당장 사람들이 많이 찾는 SPA 브랜드 매장에 가면, 항상 나오는 기성복 컬렉션보다 ‘액티브 존’으로 나뉘는 스포츠 웨어가 증가 추세에 있다.

사람들은 대체로 정해진 규범과 매일의 루틴 안에서 산다. 대부분 회사로 출근하고, 매일 정해진 일을 하며, 정해진 시간에 퇴근한다. 거리와 대중교통 안에서 마주하는 사람들이 작은 스마트폰 화면에 몰두하는 모습은 흔한 풍경이 되었다. 역설적으로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은 점점 더 활동적인 패션에 흥미를 느낀다. 그 옷을 입으면 어디든 갈 수 있을 것 같은 기분 좋은 상상에 빠진다면 너무 과한 몽상일까? 훌쩍 떠나고 싶을 때, 복잡하게 계산할 필요 없이 한 발 나아가라고 손짓하는 아웃도어와 익스트림 패션은 점점 더 ‘특수한’ 브랜드가 아닌 모습으로 젊은이들 사이에 파고들 것이다. 알게 모르게 우리 주변 가까이, 그 일상을 일탈하기 위해 꼬드기는 친구처럼 말이다.


아웃도어 라이프 전문 잡지 ‘고아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