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풍 아이디룩 대표
2018-04-30이채연 기자 leecy@fi.co.kr
진정한 혁신은 구성원들의 허물없는 소통에서 출발합니다
아이디룩이 지난달 1일자로 김재풍 사장을 신임 대표이사로 선임했다.

김 대표는 신입사원으로 입사해 최고경영자까지 올랐으니 조금 진부한 표현이지만 ‘샐러리맨의 신화’를 쓴 셈이다. 가족 경영이나 대기업 출신 영입인사가 일반적인 우리 패션전문기업 풍토에서 보기 드문 사례다.

김재풍 아이디룩 대표

취임 한 달이 채 못돼 만난 김 대표는 업무파악을 위해 따로 시간이 필요해 보이지 않았다. 그는 회사가 필요로 하는 현재 시점 전략을 이미 세워 두었고 조직원들이 혁신을 주저하지 않도록 허물 없이 소통하며 독려하고 있었다. ‘아이디룩 만의 핵심가치 정립, 이를 브랜드 사업에 적용해 시장경쟁력을 키우는 것’이 김 대표가 세운 CEO로서의 목표라고 했다.

우선 순위에 두고 추진하는 전략은 ‘기비’ ‘키이스’ ‘레니본’, 3개 브랜드를 현 여성복 시장의 주류로 다시 띄우는 작업이다. 김 대표는 이를 ‘컨템포러리화(化)’라고 이야기한다.

“자체 브랜드들의 아이덴티티를 명확하게 정립하고 이를 바탕으로 살을 찌우는데 에너지를 쏟아야 할 때입니다. 위기관리는 되었지만 상당 기간 정체되면서 소비자의 눈에서 멀어졌어요. 우리 스스로도 다수의 해외 브랜드를 도입하고 있지만 글로벌 브랜드들과 대등하게 겨뤄 소비자에게 기꺼이 선택을 받을 수 있도록 경쟁력을 키우는 것이 숙제죠.”  

컨템포러리화는 주력 브랜드인 ‘레니본’부터 시작했다. 실행 방안의 하나로 프랑스 컨템포러리 브랜드 ‘디체카옉’과 디자인 부문 파트너십을 맺었고 올 가을 첫 선을 보일 예정이다. 단순히 해외 유명 브랜드로부터 기획 방향 가이드를 받아 이슈를 만들어내는 수준을 넘어 ‘디체카옉’ CD가 책임 기획한 라인을 ‘레니본’ 내에 비중 있게 구성할 계획이다. ‘디체카옉’은 터키 출신 디자이너 에체 에쥐가 96년 론칭한 브랜드로 꾸띠르와 기성복 라인을 전개하고 있다.

‘레니본’이 보여줘 왔던 부드럽고 여성스러운 이미지에 선명한 컬러와 프린트, 도회적이고 과감한 커팅라인이 특징인 ‘디체카옉’으로 어떤 조합을 기대하는지 물었다. 

김 대표는 “이번 협업은 ‘레니본’의 콘텐츠를 신선하고 풍부하게 만드는데 분명한 목적을 두고 있다”고 강조했다.

“두 브랜드의 이미지가 어울리는지 걱정하는 의견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유행에 뒤떨어진 디자인을 ‘콘셉트’라고 변명하면서 익숙한 것, 기본은 하던 것을 돌아본다면 그 어떤 변화도 이야기할 수 없어요. 트렌드 변화에 선제적으로 대응하지 못하는 패션 브랜드, 존재 가치가 있을까요? 아이덴티티는 답습의 결과물이 아닙니다. 고유한 스토리, 오리지널리티라는 뼈대에 트렌드를 입히는 방식에서 드러나는 것이죠. 디자인팀에게 주문한 한가지도 이전 매출 데이터에서 자유롭게, 시대정신에 맞는 컨템포러리 브랜드를 시도해보자는 것이었습니다.”

온라인 사업도 보다 업그레이드된 모습을 보여줄 예정이다. 아이디룩은 2010년 자사몰을 오픈, 동 업계 선발주자로 다수 기업들에게 스터디 모델이 됐다. 작년 한 해 상품 컷과 제품 정보 표시, 결제 방법 등 사용자 환경을 개선하는 시스템 고도화 작업을 시행했고 올 3월 말 리뉴얼 오픈했다. 지난해 자사몰을 통한 매출액은 100억원, 캐시카우로 자리를 잡았다. 앞으로 아이디룩 보유 브랜드들과 시너지를 낼 수 있는 패션 아이템이나 아트워크 등을 바잉해 MD를 강화할 계획이다. 자체 브랜드의 정체성이 일정 수준 확보된 시점에 전용상품도 출시 염두에 두고 있다.

현재 아이디룩이 단독 매장으로 전개하는 브랜드는 ‘레니본’ 등 여성복 삼인방과 ‘마쥬’ ‘산드로’ ‘산드로 옴므’ ‘베르니스’ ‘클로디 피에로’ ‘마리메꼬’ ‘일비종떼’ ‘아페쎄 우먼’ ‘아페쎄 맨’ ‘덴함’ 등 수입 브랜드를 합해 총 13개, 운영 매장 수만 250개다. 지난해 1800억원의 전사 매출을 기록했고 계열사인 아이디조이의 ‘래코브’를 포함하면 외형이 2000억대다. 대기업과 그 계열사를 제외하면 백화점이 중심 채널인 여성복 전개사 중 외형 2000억을 넘긴 곳은 바바패션과 아이디룩 뿐이다.

김 대표는 올해 창립 30주년을 맞은 아이디룩에 28년째 몸담고 있다. 1991년 아이디룩의 전신인 쌍방울룩이 전개하던 유일 브랜드 ‘기비’ 사업부에 신입사원으로 입사해 총무부서를 제외하고 기획(MD), 영업, 마케팅까지 두루 경험했다. 신규 론칭에도 이골이 날 정도다. ‘기비’ 후속 브랜드인 ‘키이스’부터 이달 18일 서울 압구정 로데오거리 ‘반스’ 옆에 첫 매장을 여는 네덜란드 데님 브랜드 ‘덴함’까지, 편집숍 브랜드를 제하고 16개 브랜드에 그의 손길이 닿았다. 그 중 ‘메이즈메이’와 ‘레이크그로브’는 영업적으로는 아픈 손가락이 되었지만 이후 사업 방향 설정의 길라잡이가 된 브랜드로 꼽는다.

2003년 론칭한 ‘메이즈메이’는 한국 여성복 시장에 ‘프렌치 시크’ 열풍을 일으키고 컨템포러리 장르의 서막을 연 수입 브랜드 멀티숍의 초창기 모델이다. 볼륨화된 ‘마쥬’의 인큐베이터였고 협업 파트너인 ‘디체카옉’과의 인연도 이 브랜드에서 시작됐다. 지금은 아이디룩 자사 브랜드 아울렛점 네이밍으로 사용하고 있다. 김 대표가 부서장으로 기획한 ‘레이크그로브’는 유럽과 일본의 사례를 연구해 슈즈와 잡화를 중심으로 구성한 편집숍. 2006년 당시 국내 제도권 유통에서는 볼 수 없었던 차별화된 상품 구성에 백화점 바이어들이 앞다퉈 매장을 열어줬고 업계에서도 화제를 모았다. 결국 대중의 호응을 얻는 데는 실패했지만 계몽가 격으로 욕심을 내 시장이 수용할 수 있는 수위를 벗어나지 않는지 짚어보는 계기가 됐다고.  

인터뷰를 마치며 김 대표가 생각하는 좋은 리더의 덕목에 대해 들을 수 있었다.  

“진정한 상품 기획은 소비자를 따르는 것이 아니라 소비자를 리드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전에 잘 되었으니 안전하게 가자’는 생각으로는 발전이 없어요. 일단 저질러 보아야 제대로 방향을 잡은 것인지, 개선할 수 있는지, 그만해야 할 일인지를 논할 수 있겠죠.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고 하는데 뒤집어 생각하면 성공은 실패의 어머니라는 이야기도 되죠. 임직원 모두와 저 스스로에게도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열정과 도전의 동기를 부여하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